전국 사찰·마애상 등 2년여간 순례하며 민중 속 미륵을 깨우다
한 불교전문기자가 <돌에 새긴 희망>(이끌리오 펴냄)을 찾아 전국을 순례했다. ‘미륵을 찾아서’ 순례에 나선 이는 <법보신문> 이학종 편집장이다. 그가 2년여간 취재했고, 불교전문사진작가인 이겸씨가 1년 6개월에 걸친 사진 촬영을 해 돌 속에 잠자고 있는 미륵을 깨웠다.
미륵은 ‘먼 미래에 이 세상에 나타나 모든 고통이 사라진 이상적인 나라를 건설할 부처’를 의미한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년왕국을 가져다 줄 메시아와 의미가 같다. 미륵은 아직 오지 않은 부처이며 곧 찾아올 미래불이다.
그처럼 메시아적 미륵은 어느 순간 한 없이 작게만 여겼던 자신의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지은이가 관촉사에서 만난 은진미륵에 대한 전설에서다. 은진미륵의 발 아래에는 한 쥐가족이 살고 있었는데 부모 쥐는 예쁜 딸을 어두운 땅 속에만 있는 쥐에게 시집 보내기가 싫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힘센 신랑감을 찾아 나섰다. 세상을 밝게 비추는 해님을 찾아가 청혼을 해보았으나 해님은 구름에게 가보라고 권했고, 구름은 다시 바람을 추천했다. 그러나 정작 바람은 아무리 세게 부딪혀도 끄덕도 하지 않는 은진미륵을 지목했다. 그러나 은진미륵은 쥐가 땅을 계속 파면 자신도 넘어질 수 밖에 없으므로 쥐야말로 가장 힘센 존재라 알려줬다. 부모 쥐는 그제야 자신이 가장 힘세고 존귀한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다.
한 없이 비천하게만 여겼던 자신의 존재에 대한 자각은 곳곳의 미륵에게서 발견된다. 안성 서운산 청룡사는 소설 <장길산>에 나오는 남사당패들의 근거지였다. 이곳에서 운부대사는 길산에게 미륵의 세상은 마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민초들이 함께 힘을 모아 만들어가는 것임을 가르쳐주었다고 한다.
지은이는 꿈과 희망마저 사라져버린 곳에서 다시 미륵을 보았다. 망해버린 나라 백제 마의태자의 동생 덕주공주를 닮은 월악산 마애미륵을 보면서 ‘왜 미륵성지는 꼭 이처럼 비원을 간직했는지’를 묻는다. “좌절과 비원이 없다면 새 세상 건설의 원력, 즉 희망이 솟아날 수 없기 때문일까? 그래서 미륵의 성지는 하나같이 슬프고 비장한 역사를 간직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지은이는 사찰과 절터 뿐 아니라 마을 안에서 또는 민중들의 마음 안에 숨어 있는 미륵을 불러냈다. 지은이의 상상력이 돌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제주의 미륵이 육지의 하체매몰 형상을 한 통상의 미륵상과는 다른 형식으로 시작됐음을 말해준다. 그러니까 제주의 미륵은 육지에서 배를 타고 온 것이 아니라 아마도 남해안 땅 끝 마을 부근에 살던 바닷가 미륵이 인근 바다로 하나둘씩 뛰어들어, 바다 밑을 성큼성큼 걸어서 제주 북쪽 해안까지 와서는 현몽 등의 기이한 과정을 거쳐서 어부의 그물이나 낚시 바늘을 통해 민초 곁으로 다가오는 과정을 보여준다.’
다시 미륵을 찾아야 하는 이유는 뭘까. 지은이는 우리들에게 미륵은 희망이고, 새로움이고 새 세상에 대한 간절함이라고 했다. 조연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