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교, 퇴계사상 영향 받았어요”
수운 최제우의 부친인 근암 최옥(1762~1840)의 글을 담은 <근암집>(창커뮤니케이션 펴냄)이 나왔다. 근암은 퇴계학을 이은 영남의 거유였다. <근암집>은 퇴계학 연구 뿐 아니라 한국 근대사 변혁의 횃불을 든 수운 최제우의 사상적 뿌리를 탐문하는 근거가 될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오랜 노력 끝에 이 책을 펴낸 최동희(80) 고려대 명예교수를 만났다. 최 교수는 수운의 <동경대전>을 우리말로 옮긴 동학(천도교) 연구의 대가다. 그는 “<근암집>과 <동경대전>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으리라는 기대로 방대한 번역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수운이 “아버지의 이름이 경상도 일대를 덮었다”고 할 만큼 근암은 이름 난 유학자였다고 한다. 근암은 10대 때부터 고향의 향시에 16번 나가 모두 합격할 만큼 천재적이었으나 이미 부정이 횡횡했던 과거에 번번이 낙제해 50이 넘어서야 출사를 포기한 채 경주 구미산에 용담정을 짓고 학문에만 전념했다. 근암은 60살이 넘어 얻은 수운이 16살 때 세상을 뜨기까지 수운의 학문적 뿌리를 다져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근암은 퇴계의 영남학파를 이어받아 삶 속에서 충실히 실천하는 신도였지요.” 최씨는 천도교가 유학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대부분의 천도교인들이 인정하려 하지 않지만 천도교인들이 쓰는 ‘도호’에 근암처럼 동암, 덕암 등 모두 ‘암’자가 들어가는 것도 이런 영남학파의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우리민족은 오랜 옛날부터 ‘무궁한 세계’를 ‘ㅎ+아래아 ㄴ+아래아+ㄹ’로 불렀지요. 용비어천가에도 나오지 않습니까. 중국에선 태극과 상제로 이해한 주자학의 ‘리’()를 퇴계는 우리의 전통 문화 속의 ‘ㅎ+아래아 ㄴ+아래아+ㄹ’로 받아들였지요.”
최 교수는 “이런 퇴계 사상의 영향 아래 자란 수운이 자신이 깨달은 궁극인 ‘천()’과 같은 경지를 천주교인들도 믿는 것으로만 이해하고, ‘천주’라는 말에 상당한 호감을 느낀 것 같다”고 보았다. “당시는 천주교가 서학이라 하여 조정으로부터 탄압을 받던 때였지요. 수운은 ‘천주’를 우리가 전통적으로 믿어온 ‘ㅎ+아래아 ㄴ+아래아+ㄹ’과 같은 것으로 생각했기에, 처음엔 왜 그토록 조정에서 탄압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지요. 그러나 다음해 동학론을 써서 서학과의 차이점을 분명히 밝혔지요.”
최 교수는 수운이 ‘ㅎ+아래아 ㄴ+아래아+ㄹ 님’이라고 불렀고, 동학 안에 세력이 강했던 평안도 용천 지역의 발음대로 동학에선 한울님이란 말이 정착했다고 분석했다. 최 교수에게 <근암집> 발간은 우리의 전통인 ‘ㅎ+아래아 ㄴ+아래아+ㄹ’과 퇴계의 ‘리’(), 한울님으로 이어지는 맥락에 대한 연구를 가다듬는 계기가 된 것이다.
글·사진 조연현 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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