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년전 ‘양탕국’ ‘국민음료’ 되기까지
전북대 신문방송학과의 강준만 교수와 4학년생 오두진씨가 커피와 다방의 사회사를 추적해 <고종 스타벅스에 가다>(인물과 사상사)를 내놓았다. 커피에 미친 오씨의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사제가 함께 커피사를 정리한 것이다.
우리나라에 커피가 처음 들어온 것은 대략 1890년께. 당시 외국인 선교사나 상인들을 통해 커피가 전해졌는데, 서민들은 ‘양탕국’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커피의 색이 검고 쓴맛이 나는 것이 마치 한약 탕국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다.
1896년 아관파천 때 러시아공사관에서 커피 맛을 안 고종은 환궁한 뒤에도 그 맛을 잊지 못하고 덕수궁에 정관헌이라는 서양식 집을 짓고 그곳에서 커피를 마셨다. 고종은 1898년 커피를 마시다가 죽을 뻔했다. 세도를 부리던 역관 김홍륙이 권력을 잃고 흑산도로 유배를 가게 되자 앙심을 품고 사람을 시켜 고종과 세자가 마실 커피에 독을 넣어 독살을 기도했다고 한다.
1910년대엔 커피를 공짜로 준다는 광고가 상점 앞에 나붙더니 곧이어 일본식 다방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1927년 서울 종로 관훈동 벽돌집 1층에 카카듀라는 다방이 문을 열면서 바야흐로 다방 시대가 열렸다. 이어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영화배우 복혜숙이 인사동에 비너스다방을 냈고, 천재 시인 이상은 제비다방을 열었다. 39년엔 자유당 시절 2인자로 군림했던 이기붕이 부인 박마리아와 함께 다방을 하기도 했다.
험악한 시대엔 커피도 수난을 겪었다. 일제 말 태평양 전쟁으로 설탕과 커피의 수입이 막히면서 다방은 폐업하고, 1961년 쿠데타를 일으킨 국가재건최고회의는 특정 외래품 판매금지를 통해 커피의 수입을 제한해 커피 애호가들의 목젖과 코를 애타게 했다. 커피의 시대는 모닝커피에 이은 인스턴트 커피, 자판기 커피, 스타벅스 커피로 급류를 탔다.
지은이 강준만 교수는 “무언가 우아하고 고상한 척하는 효용은 있었을지 몰라도 좀 들뜬 분위기가 늘 커피 주변을 맴돌았다”며 “한국이 겪어온 초압축 성장의 한 단면이었다”고 썼다.
조연현 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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