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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뉴스

<새즈믄 우리말 구약정경> 완역한 최의원 박사

등록 2005-10-04 18:32

“8년간 홀로 서서 쓴 신토불이 성서”

성서는 세계적으로 불변의 베스트셀러다. 그러나 기독교 신자가 천만이 넘는데도 한국인에게 성서는 여전히 ‘어려운 책’으로 남아 있다. 왜일까. 이 질문에 새롭게 번역한 성서로 답한 학자가 있다. 최의원 박사(81)다. 학자보다는 영성가를 연상시킬 만큼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얼굴을 지닌 그가 한글날(9일)을 앞둔 4일 한국언론회관에서 발표회를 열었다. <새즈믄 우리말 구약정경>(도서출판 신앙과 지성 펴냄)이란 성서 번역서를 세상에 내놓은 자리였다. 책이름에 ‘새로운 천년’을 나타내는 순우리말인 ‘새즈믄’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부터 ‘신토불이’성격을 보여준다. ‘정경’(正經)이란 아직 교회가 받아들이기 전이므로 ‘성경’보다 겸양해 표현한 것이다.

14개국어 정통한 최고 히브리어 학자“영어 일어 중국어 재탕삼탕 원뜻 멀어”판매 수익금은 장학금으로

구약은 모세가 유대민족을 애급(이집트)에서 이끌던 기원전 14세기 무렵부터 1천여 년 간 20여명에 의해 히브리어로 쓰인 것으로 전해온다. 최 박사는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히브리어 학자다. 유대교 신학자를 길러내기 위해 히브리어를 가장 깊게 공부해 ‘인문학의 엠아이티(MIT,메사추세츠 공과대학)’로 불리는 미국의 드랍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총신대 교수와 한국외대 아랍어학과장, 천안대 신학대학원장을 지냈다. 또 한국 기독교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대한성서공회의 성경 번역 작업을 할 때마다 최대 교단인 예수교장로회 합동 쪽 대표로 참여했다.

그런 그가 왜 이번엔 ‘함께’가 아니라 ‘홀로’ 번역에 나섰을까.

“20~30명이 모여 함께 성서를 번역하다보면 교단과 학자마다 학설이 달라 ‘어떻게 번역하는 것이 옳은가’보다는 ‘어떻게 합의점을 도출할 것인가’에 더 힘을 기울이게 마련이다. (번역이) 잘못된 줄 알면서도 다수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다.”

구약을 한 명이 완역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14개 국어에 정통한 그가 아니면 누구도 엄두를 낼 수 없는 작업이다. 그는 지난 1997년부터 8년 간 선 채로 원고를 썼다고 한다. 노구의 몸으로 앉은 채 장시간 작업을 할 경우 하반신 마비가 올 수 있다는 의사의 경고에 따라 그가 다리가 긴 책상을 직접 만들어 선 채 작업을 했다는 것이다.

최 박사가 이런 어려운 작업을 자청한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있다. 기존의 성서는 히브리어를 독일어나 프랑스어로, 다시 영어로, 이어 일어로, 중국어로 번역한 것을 우리말로 옮기는 식으로 재탕 삼탕 재번역을 하다 보니 외래어로 뒤범벅이 되고, 원문의 뜻과 크게 멀어져서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기독교 신자는 물론 목사들도 뜻을 알기 어려웠던 목차의 제목부터 과감히 바꾼 이유다. 민수기는 민족유랑사로, 신명기는 신율법서로, 역대기는 구약세계사로 바꿨다. 목차만으로도 그 책이 무엇에 관한 내용인지 알 수 있게 된 셈이다. 발표회에 동석한 출판준비위원장 김인환 총신대 총장과 강경호 서울교육대대학원장, 유동표 목사 등은 지금까지 뜻을 알건 모르건 중국의 번역을 답습해온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이런 수정은 혁명적인 것이라고 평가했다.

목차를 바꾼 것은 혁명의 시작일 뿐이다. 창세기 2장 4절에서 그는 ‘창조’ 대신 ‘개벽’이란 말을 썼다. 공인된 성서엔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고 된 것을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신 때에 천지를 개벽시키신 요지다’라고 바꾼 것이다.

“우리 민족의 우주론에서 창조는 없어요. 오래 전부터 개벽이란 말을 써왔지요.” 그는 또 시편 1장 1절에서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를 ‘복 많이 받는 사람은 악인들의 계책을 따르지 아니하며’로 바꿨다. 우리나라에선 설날부터 “복 많이 받아라”고 말하는 등 ‘복 많이 받은 사람’이란 표현이 쓰이지 ‘복 있는 사람’이란 표현은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번역에선 여자에 대한 대우가 크게 달라졌음도 눈에 띈다. 남자의 갈빗대로 여자를 지은 내용인 창세기 2장 23절에서 ‘나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다’란 문장 앞에 ‘공인 성서’엔 없는 ‘이분은 기특하다’는 대목을 첨가했다. 여자를 지은 뒤 하나님의 남다른 감격을 써넣은 것이다.

1960년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귀국해 교단에 섰을 때 신학생들이 서구의 개념들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보고 우리말과 우리 문화로 성서를 전해야겠다는 필요성을 절감했다는 최 박사는 그 뒤 수십 년간 꾸준히 한글 맞춤법과 우리 문화를 공부해왔다고 한다. 일제 때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나 나라 잃고 떠도는 부모를 따라 중국에서 초등학교를 마친 그는 “언어를 잃어버리면 민족과 문화도 잃어버리게 된다”면서 “이 책이 우리 것을 도외시하는 우리 사회의 언어문화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계기가 된다면 더 이상 바랄 나위가 없다”고 말했다. 그가 학처럼 가는 다리로 선 채 쓴 이 책의 판매 수익금은 모두 후학을 양성하는 장학금으로 쓰인다.

글·사진 조연현 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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