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든 기독교인이든 서로 배우면 축복”
눈 푸른 서양의 가톨릭 신부가 사찰에서 선사상을 설파했다. 백련불교문화재단(이사장·원택 스님)이 12일 부산시 중구 중앙동 고심정사에서 주최한 ‘성철 스님 열반 12주기 추모 학술세미나’에서였다.
서명원 신부(베르나르 세네갈·52·서강대 종교학과 교수)를 발표에 앞서 만났다. 그는 성철 선에 대해 해박했고, 시원시원했다.
“성철 스님은 돈오(단박에 깨달음)했을까요?”
“만약 본인이 돈오하지 못한 채 돈오돈수(단박에 깨달으면 더 이상 닦을 것이 없음)를 그렇게 시종일관 강력히 주장했다면, 순거짓말쟁이, 순사기꾼이겠지요.”
담백하게 묻자 그도 담백하게 답했다. 그는 “만약 성철 자신의 체험이 없다면 <선문정로>와 같은 책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라며, “체험 없이 글을 읽어서만 안다면 결국 자가당착에 빠져 설득력과 일관성, 힘이 드러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심정사 법당 안 성철의 영정 앞에 선 서 신부는 어쩐지 성철을 닮아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서 신부는 “성철 스님과 수천시간을 함께 보냈다”고 했다. 그는 ’성철의 총서와 생애’논문으로 파리7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서강대에서 ’불교 이해’와 ’수행과 명상’을 가르치고 있다.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의대에 다니던 그는 존재와 ’죽음 이후’의 문제를 붙들고 고뇌하다 가톨릭 수도회인 예수회에 입회했다. 1984년 한국을 방문했다가 88년 다시 찾아 정착한 그는 재가참선단체인 한국선도회를 이끄는 서강대 박영재 교수(교무처장 및 물리학과 교수)로부터 참선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고 나서 기도하고 있을 때 돌연히 일어났던 체험도 ‘돈오돈수와 같은 것’이라고 본다. 한 번의 체험 이후 죽을 때가지 진리의 궤도를 조금도 이탈하지 않고, 이타행만 하면서 살다시피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예수의 제자들은 스승의 부르심에 단박에 응답하긴 했지만, 성숙해질 때까지 점차적 수행을 한다는 점에서 돈오돈수와 비슷한 것으로 보았다.
성철에 깊게 빠진 그이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그리스도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 간다”는 점에서 그는 승려나 불자들과 분명히 다르다. 서 신부는 “애매모호함이 화기애애함만을 낳게 된다”고 농담을 했다. 종교적 비빔밥은 원치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서로 다른 것을 억지로 같게 만들려고 하지 말고, 차이를 인정하면서 배우라는 것이다.
그는 불자와 그리스도인들이 서로에게 배울 수 있는 축복을 놓치지 말 것을 주문했다. 그 스스로도 참선을 하면서 마음이 열리고, 너그러워지고, 자유로워졌다고 한다.
“불자와 그리스도인이 25%씩 인 이 나라에서 서로 ‘나만 옳다’며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제 갈 길만 가기보다는 서로 인정하고, 우리가 사는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드는 데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산/글·사진 조연현 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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