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치레 보다는 내실 다져가겠다”
동국대총장 거친 대표적 학승…파벌넘어 종단화합 과제
앞으로 4년 동안 한국 불교계를 이끌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에 지관(73·가산불교문화연구원장) 스님이 당선됐다.
지관 스님은 31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종 총무원청사에서 치러진 제32대 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선거에서 전체 투표자수 320표 가운데 과반수인 165표를 얻었다. 전임 총무원장 법장 스님의 지지파인 종단 내 여권의 추대로 출마한 지관 스님에 대항해 겨룬 야권 대표 격의 정련(63·부산 내원정사 주지) 스님은 146표를 얻었다. 애초 7명의 입후보자 가운데 2명은 중도 사퇴했다.
지관 스님은 1947년 해인사에서 율사인 자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해인사 주지와 동국대 불교대학 학장, 동국대 총장 등을 거친 대표적인 학승이다. 82년 불교 대백과사전의 편찬에 나서 현재 모두 15권 가운데 7권의 <가산불교대사림>을 발간했으며 91년 동국대 총장에서 물러난 뒤에는 사재를 털어 ‘가산불교문화연구원’을 개원했다.
지관 스님은 당선 직후 연 기자회견에서 “겉치레에서 내실로 전환”을 힘주어 강조했다. “우리 종단은 외형적인 불사에 치우친 감이 있었다. 절집은 지을 만큼 지었다. 이제 겉치레보다는 내실을 확고히 다져가겠다.” 이웃 나라인 일본이나 대만에 비해 빈약한 한국 불교의 교학을 살리기 위해 평생 매진해온 학승 출신 총무원장으로서 색깔을 보다 분명히한 것이다. 그는 “점차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한 템플스테이(사찰체험) 등이 많아지고는 있다”며 “좀 더 내면적인 분야, 즉 수행을 착실히 해 가면서, 한국 불교 문화재에 스민 정신적인 면을 알려 나가겠다”고 말했다. “시신을 기증하고 떠난 법장 대종사를 추모하며, 그 원력을 이어 가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지관 스님은 아울러 징계자 사면을 강조했다. 한국 불교는 왜색 불교의 정화와 종단 분규 등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그때마다 징계자가 발생했다. 전임 총무원장인 법장 스님도 승적이 박탈됐거나 정지된 승려들의 징계를 종단 화합 차원에서 사면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떴다. “1962년 통합종단 출범 이후 94년과 98년 두 차례에 걸쳐 분규를 겪으면서 멸빈(승적 박탈)의 징계를 당한 분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러나 스님들 간에 종단을 위하는 생각과 입장이 달랐을 뿐이다.” 종단 싸움에서 종권을 빼앗긴 패자가 늘 징계를 받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발언인 셈이다. 그는 “이분들은 지금도 절에 있으면서 포교를 하고 있다”며 “10년 전후의 세월이 흘렀으니 징계를 풀어서 종단을 위해 함께 일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관 스님은 조계종이 총무원장을 선거로 뽑아 오면서 불가피하게 생긴 파벌들을 껴안고 화합 종단을 이끌어야 한다는 숙제도 안고 있다. 법장 스님이 갑작스럽게 열반한 것도 파벌 간 싸움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게 총무원 안팎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24개 교구별로 10명씩과 종회의원 80명의 선거인단이 투표한 이번 선거에서 지관 스님은 애초 16개 본사주지의 옹립을 받았음에도 야당 대표 격인 정련 스님을 165 대 146으로 간신히 이겼다. 지관 스님이 선거에서 나뉜 승가를 어떻게 다시 하나로 모으고, 법장 스님이 남기고 간 자비정신을 확산시켜 갈지에 불교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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