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명 함께 사는 사랑의 길로”
박경조 주교(61)의 시대다. 그는 지난해 주교 서품을 받은데 이어 지난 1일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장으로 취임했고, 14일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의 회장으로 추대됐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은 기독교장로회, 대한감리회 등 7개 가맹 교단에서 돌아가며 맡는데, 이번에 성공회 차례. 그래서 그가 서울교구장이 되자마자 한국 교회의 얼굴이 된 것이다. 또 관구장 겸 서울교구장이던 전임 정철범 대주교에 이어 다른 주교들이 줄줄이 65살 정년은퇴를 앞두고 있어 내년엔 박 주교가 대한성공회를 대표하는 관구장도 맡을 것으로 보인다.
복음주의자서 80년대 현실파로‘예수 믿어 복 받자” 이제 그만2006년 세계 성공회 수장들 북한에
15일 서울 정동 대한성공회성당 인근 세실레스토랑에서 만난 박 주교에게 “사진보다 실물이 더 잘생기셨다”고 ‘무례’한 덕담을 건넸더니, 수줍게 웃는다. 온유하고 겸손하다는 세평이 그의 눈빛에서 그대로 풍긴다. 얼굴이 벌겋게 상기돼 ‘교회의 성장’과 ‘선교’를 역설하는 그런 교회 지도자의 이미지가 아니다.
“교회의 의식이 이제 깨어나야지요. 아직도 예수 믿어 복 받자는 정도에 머물러 있어야 되겠습니까. 이제 우리 주위의 ‘생명’에 눈을 떠야지요. 그래서 인간만이 아니라 자연의 모든 생명들과 어울려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지요.”
녹색연합 공동대표답게 일성이 생명에 대한 관심이다. 그는 “전쟁 등 어려운 시기를 지나며 오직 살아남기 위해 내 위주의 욕심만 챙기면서 교회조차 무한한 부의 축적과 성공만을 부추기게 됐다”며 “예수의 가르침은 그것이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제 그만 거기서 돌아서라’, ‘함께 사는 사랑의 길을 걸어라’. 그게 예수님의 가르침 아닙니까.”
박 주교는 “한국 교회가 변화의 흐름을 통찰하지 못한 채 끝내 신자유주의만 신봉하고, 약자를 끝내 외면하며 ‘예수 믿어 복 받자’는 신앙에만 머무른다면 사회로 부터 ‘당신들의 교회’로 외면당하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의 말이 더욱 무게감을 갖는 것은 그의 실천적 삶 때문이다. 그는 젊어서는 성령의 은사로 구원받아보려는 복음주의자였다. 그러나 80년대 고통 받는 사람들의 현실에 대한 자각이 일면서 정의평화사제단에 헌신했다. 6.10민주항쟁 때 성공회성당이 그 진원지가 되도록 한 숨은 주역 중 한 명이기도 했다. 성공회는 대형 교단만큼 교세가 크지 않으면서도 가난한 이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는 푸드뱅크를 시작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80년대 서울 대학로교회 사제로 있으면서 김홍일 신부 등을 상계동 빈민촌에 자세를 털어 방을 얻어주며 봉사에 나서게 한 것도 그였다.
통일운동에 앞장서온 그는 내년에 세계 성공회의 수장인 영국 캔터베리 대주교를 비롯한 미·중·러·일본 등의 성공회 지도자들과 공동으로 남북한을 동시에 방문해 한반도 화해 분위기를 이끌 계획을 갖고 있다. 지난달 서울대성당에서 인근의 새문안교회와 정동감리교회와 교차로 방문해 연합예배를 드려 화제가 되기도 했던 박 주교의 걸음걸음에서 또 어떤 화해의 꽃이 필까.
글·사진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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