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만자로에 부처님 쉼터 세우려”
‘구름인가 눈인가 저 높은 곳 킬리만자로 오늘도 나는 가리 배낭을 메고 산에서 만나는 고독과 악수하며 그대로 산이 된들 또 어떠리’
동봉 스님(52)은 지난 5월 이 노랫말처럼 킬리만자로에 갔다. 잠시 귀국한 그는 여전히 긴 수염 그대로지만 많이 야윈 얼굴이다.
경기도 광주 곤지암 주지였던 그가 아프리카에 가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는 60~70년대 조계종 종정을 했던 고암 스님에게 출가해 용성선사의 어록집을 펴내고, 한자로 된 불교의 주요 경전들을 혼자 힘으로 번역한 <일원곡>을 13권까지 낸 실력파였다.
그런 그가 10년 간 혼혈을 다해 가꾼 우리 절을 아무런 대가 없이 다른 스님에게 넘기고 배낭 하나 메고 홀연히 떠나갔다.
“절이라는 게 신자들의 시주 물로 지어진 것인데, 사고 팔 수 있겠습니까. 절 집에 들어올 때 빈 몸뚱이로 들어왔으니, 절을 나갈 때도 빈 몽뚱이로 나가는 게 당연하지요.”
그래서 빈 몸뚱이로 출발한 아프리카의 생활이 그에겐 더욱 버거울 수밖에 없다. “20~30대 때와 달리 조금 두려운 건 사실이에요. 그러나 편히 살려면 여기서 살 지 무엇 때문에 그곳에 가겠습니까.”
이미 고생길은 각오했다는 말이다. 그는 작년 11월 말 20일 간 탄자니아에 갔다가 아프리카 52개국 어디에도 ‘한국 불교’는 없다는 말을 듣고, 불현 듯 뼈를 묻어도 좋을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난 5월 드디어 탄자니아의 수도 다레살람으로 떠났다. 적도 부근이어서 1년 내내 여름인 그곳에서 그는 밤이면 큰 나무 밑에 앉아 참선을 했다. 그랬더니 나무 밑에 쉬러 온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참선을 하느냐”고 물으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밤이면 70~80명이 나무 밑에 함께 앉아 함께 참선을 한단다.
동봉 스님의 꿈은 킬리만자로에 한국 전통 사찰을 세워 누구나 와서 명상을 하는 명상센터로 가꾸는 것이다. 눈 싸인 킬리만자로와 우리 절의 아름다움이 절묘한 조화를 빚어 세계적인 명물이 될 것이라고 그는 확신한다. 그는 그곳에서 한국의 전통 문화를 아프리카와 세계에 전할 생각이다.
스님의 꿈은 이 만이 아니다. 한반도 4.5배 크기의 면적에 4천여 만 명이 사는 탄자니아는 킬리만자로와 세링게티가 있는 동물의 왕국이지만, 1인당 국민소득 250달러의 빈국이다. 연간 강수량이 우리나라 절반 정도인 700미리밖에 안 되는 탄자니아는 그나마 이 물마저 저장해놓는 시설이 거의 없어 흘려보내고 말아 건기가 되면 물이 없어 죽는 사람이 적지 않다.
성철 스님도 훌륭하지만, 자기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다간 테레사 수녀를 더 존경한다는 그는 물차를 사서 목말라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물을 나눠주고 싶다고 했다. 킬리만자로에 간 고독한 사나이는 킬리만자로 사람들의 고독을 덜어주려 다시 21일 밤 비행기에 올랐다.
글·사진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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