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즈넉한 산사의 솔바람 듣는 듯”
“수천의 생을 반복한다 해도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은 아주 드물다. 그러니 지금 후회 없이 사랑하라. 사랑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입보리행론)
오전 9시5분부터 10시까지 불교방송 라디오를 타고 여백 있는 음률과 함께 ‘행복한 미소’가 흐른다. 성전 스님(45)이 한 잔의 차처럼 전하는 불교 경전의 명구를 들은 여성 청취자는 가을 바람에 스러진 은행나무 잎에 스마일 마크를 붙여 봉투에 넣어 보냈다. 꼭 미소를 닮은 은행 잎을 받아든 스님은 다시 다음날 방송에서 “가볍게 살다 떠나는 것들은 이렇게 웃음을 남기고 떠난다”고 화답했다.
비구니들 맡았던 인기 오전 프로첫 비구 진행자에 방송 초보로 우려‘독특한 감성’ 보살 청취자들 호응
마치 고즈넉한 산사의 솔바람처럼 스치는 스님의 말에 보살(여성 불자)들은 편지를 써 보내고, 스님은 다시 그 편지를 낭송해 많은 청취자들의 가슴에 여백을 남긴다.
<성전 스님의 행복한 미소>는 이렇게 디제이와 청취자들이 함께 하는 방송이 되었다. 정목 스님과 진명 스님 등 비구니들이 방송에 등장한 <차 한잔의 선율>로 히트 쳤던 시간대에 지난 5월 비구 스님이 기용될 때만 해도 기대보다 우려가 컸다. 비록 그가 해인사에서 발간하는 <해인지>와 <선우도량> 등 불교계 잡지 편집장 출신이지만, 방송엔 초보자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교방송이 그가 지난해 펴낸 <행복하게 미소 짓는 법>이란 책 이름을 따가며 그에게 전적으로 방송을 맡겼고, 그는 청취율을 더욱 높임으로써 기대에 부응했다.
최윤희 피디(PD)는 “스님은 부처님 얘기를 많이 하지 않으면서도 성찰의 계기를 준다”며 “스님이 품는 특유의 감성과 독특한 아우라가 삶을 관조하려는 사람들의 감성을 터치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40년간 장좌불와(눕지 않음)하고 수행자의 사표로 살다 2003년 열반한 청화 스님에게 1989년 출가한 스님은 강원도 영월의 산골에서 9남매 중 여덟 번째로 태어난 시골 소년의 순진한 미소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토요일만 제외하고 매일 있는 방송 때문에 거의 매일 방송국에 출근하느라 서울 안암동 개운사에 묵고 있는 스님은 “출가할 땐 산사에서 나무하고 밥하고 수행하는 것만 생각했지 이런 삶은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이렇게 살고 있다”고 쑥스럽게 웃었다.
그가 방송 시간보다 1시간 30분 일찍 방송국에 도착해 하는 일은 방송 마지막에 낭송하는 ‘오늘의 발원’의 원고를 쓰는 일이다.
“삶이 아름다운 것은 당신이 있어서입니다.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의 모습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불완전하기에 나는 더욱 더 행복합니다. 전지전능의 고독보다는 불완전함의 기댐이 더 따뜻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렇게 따사롭게 쓴 글들이 <지금 후회 없이 사랑하라>(도솔 펴냄)란 이름의 책으로 나왔다.
“달을 바라보고 있으면 가슴에 달빛이 가득 고입니다. 별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에 별꽃 무리가 피어납니다. 당신과 마주하고 있으면 행복한 미소가 샘솟습니다.”
글·사진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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