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울고 함께 웃고 종교의 벽 넘어서니 삶의 성지 거기 있네
불교와 가톨릭, 개신교, 원불교 등 4개 종교 여성 수도자들이 19일 간 세계성지순례를 마치고 23일 귀국했다. 지난 5일 원불교의 발상지인 전남 영광을 출발해 인도와 영국, 이스라엘, 이탈리아를 도는 장정이었다. 순례엔 원불교 교무 6명, 불교 비구니 스님 5명, 가톨릭 수녀 3명, 성공회 수녀 2명이 함께 했다. 불교, 개신교, 가톨릭, 원불교 등 국내 4대 종교의 여성수도자들이 함께 한 것이다.
오랫동안 꿈만 꿔오던 순례가 실현된 기쁨을 하늘은 서설로 축복해주었다. 원불교를 창시한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가 태어나 깨달음을 얻고 교화를 시작한 전남 영광에 도착하자 영산성지 출장소장인 청타원 이경옥 교무가 대형 연차로 삼소회원들을 장도를 축복해 주었다. 가장 정교한 정수기와 같은 연 줄기처럼 전쟁과 테러의 활화산인 종교간 갈등의 기운을 정화하라는 말 없는 기도였다. 첫밤 세상을 덮은 하얀 눈 사이로 원불교 익산 중앙총부에 간 삼소회원들에게 좌산 이광정 종법사는 “인류 역사의 한 판 기운을 바꾸는 계기가 되라”고 서원했다.
불교·가톨릭·개신교·원불교여성 수도자 16명인도·영국‥이스라엘·이탈리아 장정다른 습성 다른 종교갈등도 번졌지만교의 걷어내자 공감…‘삼소’ 우리 안에 있었다
6일 인도로 향한 이들은 서로 다른 종교인들이 한 데 어우러져 먹고 자는 순례에 대해 설렜고, 흥분했다. 녹야원에서 함께 탑돌이를 하고, 평화명상을 하는 이들을 보고, 외국 관람객들의 탄성이 터졌다. 최근 무슬림들의 시위가 있던 프랑스에서 온 가톨릭신자 제로레와 캐시는 “다른 종교인들이 함께 앉아 있는 모습 자체에서 깊은 고요가 느껴진다”고 했다.
그러나 종교인들이 그리는 이상적인 종교와 달리 순례는 현실이었다. 설렘은 머지 않아 너무나 다른 신념과 습관의 벽 앞에서 갈등으로 바뀌었다. 기원문에서부터 ‘유일신’을 믿는 가톨릭은 하느님이 다른 교조와 함께 열거하는 것을 거부했다.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녹야원에서 열린 평화기도회에서 수녀들이 절을 하지 않은데 대해 스님들이 냉가슴을 앓기 시작했다.
드디어 영국 캔터베리대성당에서 성공회에서 배포해 스님이 읽게 한 기도문에 “세상을 창조하는 하느님…”이란 문구가 들어가고, 가톨릭이 교황에게 드리기 위해 참여자들의 사인을 받은 선물에 “당신의 어린 딸들이…”라고 써놓은 것이 확인돼 한바탕 소동이 일기도 했다.
자기 ‘종교’를 내세우고, 다른 ‘종교’를 거부하는 순간 갈등과 번민이 성소를 가로막았다. 자기 종교만을 앞세울 때 다른 종교인에겐 성지마저도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성벽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종교인의 관념 속엔 ‘종교’가 깊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19일의 긴 여정은 삶이었다. 이들은 식탁에서, 버스와 기차, 비행기 안에서, 잠자리에서 이웃과 친구와 언니와 동생으로 만났다. 삶 속에서 이들은 다른 종교인이 아니라 ‘여성’과 ‘수도자’ 또는 ‘같은 사람’으로 어울렸다. 삶 속엔 눈물과 웃음이 배어났다. 함께 흘린 눈물과 함께 웃는 웃음이야말로 그들이 순례에서 만나려던 성소였다. 인도 부다가야 옆 불가촉천민촌에서 한국인 불자들이 운영하는 수자타아카데미에서 우물물마저 제대로 마시지 못하는 천민들을 위해 원불교 정인신 교무는 우물을 팔 돈을 보시했고, 마르 코르 수녀는 그들의 비참한 삶에 내내 눈물을 거두지 못했다.
또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이 깃든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올리브동산에선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날 마지막 기도를 올리던 예수의 몸부림이 가슴에 와닿는듯 눈물 흘리는 마리아 수녀를 진명 스님이 껴안으며 함께 눈물을 흘렸고, 베아타 수녀와 한 방을 썼던 지정 교무와 하정 교무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골고다 언덕을 걷겠다”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본각 스님도 그리스도교 성구를 선물로 사 수녀들에게 나눠주었다. 사찰 음식의 대가인 선재 스님은 준배해온 음식으로, 형일 교무는 판소리로 각각 긴 여정의 시름을 달래주었다. 대부분의 숙식을 호텔이 아닌 수도원에서 하면서 긴 여정을 소화하느라 감기에 걸린 순례자들에게 혜성 스님은 온갖 약을 보시했다. 마지막 기착지인 이탈리아 로마에서 한나절 동안 옛유적을 돌아보던 이들은 아이스크림을 서로 베어 먹으며 어깨동무를 하고 로마 시내를 활보했다. 티격태격한 갈등은 마치 옛 추억이 된 연인처럼.
글·사진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종교의 다름’ 포용하기 가깝고도 먼 수행
삼소회 세계 성지 순례는 이웃 종교인들의 성지를 수도자들이 함께 방문하는 아름다운 선례를 남겼다. 이들 순례단을 맞은 티베트의 정신 지도자 달라이 라마도 “성지 순례야말로 가장 좋은 수행”이라며 “이웃 종교의 성지를 방문할 때는 바로 그 종교인의 마음이 떠날 것”을 당부했다.
그러나 이번 순례에서 달라이 라마의 당부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자기 종교의 교의만을 내세우거나, 상대 종교에게 자기 종교의 방식을 강요하는 현상이 나타나 서먹해진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에 대해 순례단원들은 애초 순례를 위해 기도를 함께 했던 이들의 상당수가 이번 순례에 빠지고, 순례를 위한 사전 준비가 미흡한 채 의욕만으로 순례를 강행한 데 따른 당연한 결과였다고 자탄했다. 실제 매달 한 차례씩 모여 평화명상을 해온 삼소회원들 가운데 6명만이 이번 순례에 참석했다. 이웃 종교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나 예식, 예절조차 익히지 못해 자신도 의식하지 않는 가운데 상대방 종교를 폄하하거나 종교인들에게 상처를 입히게 됐다는 것이다. 순례단을 이끌어온 진명 스님은 “이웃 종교와 함께 할 때는 자기 종교를 가로 놓기 해야한다”고 끊임 없이 강조했지만, 각 종교의 아성 앞에 공염불이 되고 말아 이웃 종교인들끼리는 각 종교의 성지를 가기보다는 봉사활동 등 공동선을 위한 활동이 더 적절하다는 의견들이 나왔다. 실제 이웃 종교인들이 함께 하는 데 대한 연습 부족으로 인해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라는 대의보다 오히려 내부 화해가 더 큰 화두로 떠오르곤 했기 때문이다.
순례단들은 점차 다른 종교 간에 더욱 두드러진 ‘다름’을 수도와 공부의 방편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다양성 속 조화를 이루기 위한 진통이 적지 않았지만, 그만큼 이들이 배운 것도 많았다. 이번 순례를 주도했던 지정 교무는 “종교인들의 다름과 사소한 갈등은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현실”이라며 “이를 그대로 수용하면서 자신을 성찰하는 것도 순례의 목적”이라고 했다.
이번 순례를 통해 이들은 종교는 다르다는 것. 그러나 상대에 대한 지식과 배려가 있다면 조화롭게 어우러질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조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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