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는 다양한 종교들과 각양각색의 가치들이 함께 만나고, 때로는 충돌하는 다원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현대의 종교 상황들은 더 이상 자신의 전통이나 교리에서 사회적 설득력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오늘날의 종교는 일상적인 삶의 경험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때에만 설득력을 지닌다.”
강남대학교 교양교재편찬위원회가 펴낸 <기독교와 현대사회> 41쪽의 내용이다. 그러나 이 과목을 학생들에게 강의한 교수가 교수진이 이렇게 쓴 내용에 ‘충실’해 교수직을 잃는다면?
강남대 “타종교와 융합 창학이념 위배” 이찬수 교수 재임용 거부학생들 “참 진리 배웠는데”… 종교학회 “학문적 소신 위축” 비판
개신교 사학으로 종합대인 강남대(경기도 용인)가 교양필수로 <기독교와 현대사회>를 강의하는 이찬수 교수(44)에 대해 지난 1월 재임용을 거부했다. 이 교수는 새학기부터 강단에 서지 못하고 있다. “그의 강의에서 창학이념에 맞지 않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는 게 해임 이유다.
강남대 인사담당자인 이종렬씨는 “교목실에서 한 학생들 면담에서 이 교수가 기독교를 비판하고, 타종교와 융합하려 해 기독교 정서에 위배된다는 얘기들이 있었다”며, “이 교수를 기독교를 교육시키는 강의전담교수로 뽑았지만, 창학이념을 가르치기엔 적당하지 않다”고 재임용 거부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이 교수는 서강대에서 불교학과 신학으로 각각 석사학위를 받은 데 이어, 비교종교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1999년 5월부터 강남대에서 강의해 왔다.
교목실이 이 교수에게 화살을 돌린 것은 ‘다양성에 대한 관용’을 알리는 <교육방송>의 <똘레랑스>에서 2003년 10월 ‘사찰에서 절하는 장면’이 방영되면서부터다. 당시 이 교수는 교목실이 이를 문제 삼자 “기독교의 배타성을 혐오하는 프로듀서에게 사찰의 예절 정도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과 모든 기독교인이 그렇게 배타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한 사적인 의도의 표현이었다”라고 해명했다.
강남대 설립자인 우원 이호빈 목사(1898~1989)도 절에서 예의를 표해 곤혹을 치른 적이 있었다. 우원이 신학생 시절 수학여행 때 교수와 학생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대웅전 본존불 앞에서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여 퇴학당할 처지였지만, “남의 집을 방문한 사람이 그 집의 가풍을 존중하는 예의 표현 정도일 뿐”이라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강남대에서 펴낸 우원의 전기에서도 우원이 그 사건을 통해 “선교사들의 틀에 박힌 신학과 독선적인 교권주의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한국의 교회가 올바르게 성장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쓰고 있다. 강남대는 독실한 불자인 차재윤씨가 땅 30여만 평을 아무 조건 없이 우원에게 희사함으로써 초석을 다지는 등 종교간 화해의 토대 위에 자란 전통을 갖고 있다.
강남대는 우원의 뒤를 이어 윤도한 장로가 이사장이 됐고, 현재는 윤 장로의 부인인 방순열씨가 이사장으로, 방씨의 아들 윤신일씨가 총장으로 있다. 윤 총장 일가가 경영과 여러 교수진으로 참여하는 전형적인 족벌 사학의 형태를 띠고, 우원과 단절을 모색하면서 이런 교권주의적 모습이 강화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강남대는 현 교목실장인 윤갑수 목사가 담임인 대학 내 교회 출석 여부를 승진 점수에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경기도 퇴촌의 길벗예수교회에서 무보수 목수로 봉사하는 이 교수는 “대학교회의 주일 예배에 출석하지 않은 것도 교목실의 눈 밖에 난 이유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의 재임용 탈락에 학생들도 교내 인터넷 게시판 등을 통해 학교 쪽에 항의하고 있다. 학생들은 “교목실에 찾아온 학생이 있기는 한 거냐”, “아무나 교목실에 찾아가서 말하면 모든 교수님들을 자를 수 있는 거냐”고 물었다. 또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관점으로 끌어들이려고만 했는데, 이 교수님을 통해 참된 진리를 조금이나마 알게 돼 신앙을 갖게 됐다”거나 “교수님 때문에 초등학교 이후로 다니지 않던 교회를 다니게 됐다”는 글도 있었다.
한국문화신학회 회장단도 “이 교수는 종교간 대화를 통해 타종교 전통 안에 있는 학자들에게 기독교를 소개하고 알리는 데 앞장서 온 학자”라며 강남대에 선처를 요구했다. 또 한국종교교육학회 임원들은 “이 교수의 학문적 능력과 인품은 학회원들 대부분이 공감하고 있다”며 “이 교수의 임용 탈락이 학자의 학문적 소신을 위축시키고 특정 이념의 강요만 횡횡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감신대 이정배 교수는 “‘하나만 알면 아무 것도 모른다’는 종교학의 철칙 때문에 신학교에서도 다른 종교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폭넓은 교육이 이뤄지는데, 종합대에서 이 교수의 강의를 문제 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