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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뉴스

서울서 전시회 여는 재독화가 이승연씨

등록 2006-03-08 20:43

우물 속 깊이 외친 ‘넌 누구냐!’

이국땅서 참선에 눈뜬 뒤 작품 단순하게

“깨달음 얻으니 화장한 아버지 뼈도 아름다워”

“넌 누구냐?”

너무도 단선적인 한마디 물음이 그의 작품을 아주 ‘단순하게’ 바꿔버렸다.

서울대 응용미술과를 졸업하고 1981년 독일에 유학한 재독화가 이승연씨(49). 독일인 내과의사와 결혼해 주변의 부러움을 사며 독일정부 후원으로 시골 ‘예술인 마을’에 머물며 작품을 했던 그였다.

어린시절 가톨릭 세례교인이었지만 가슴엔 늘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희한한 일이었다. 독일로 떠날 때 한 수도회 수녀가 그에게 “반드시 가져가라”며 선(禪) 관련 책을 소개했다. 유학중 삶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으로 작품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을 때, 그는 책을 펼쳤다.

“바로 이것이다!” 선승이 지천인 한국에서 찾지 못한 선을 이국 땅에서 찾은 것이다. 슬픈 일이지만, 그는 홀로 통쾌하게 웃었다. 그러나 독일 땅에서 선 스승을 찾을 길이 없었다. 90년대 들어 그는 혼자 참선 하다가 세계적인 숭산 선사의 독일 제자인 롤란드 뵈를레(무경법사)로부터 본격적으로 참선을 배운다.

1996년엔 누구보다 자신을 이해해주던 아버지가 6년 투병 끝에 세상을 떴다는 소식이 독일에 날아왔다. 그가 귀국했을 땐 이미 화장까지 끝나 한 줌 재와 뼈 몇 조각만 남아있었다. 선객의 심안이 열렸던 것일까.

그는 “하얗고 작은 뼈가 얼마나 예쁘던지, 그렇게 가볍고 아름다워지려고 6년간 그토록 아프셨나봐요”라고 했다.

드디어 그의 삶에 일대 전기가 된 것은 2002년 숭산 선사의 제자 야콥 펄(우봉선사)과 만나면서였다. 그는 ‘묘지’라는 법명을 받았다. ‘묘한 지혜’라는 뜻이란다. 하지만 그는 “이제는 모든 것을 놓고 싶은 마음을 담아 무덤으로 받아들였다”고 했다.

그때부터 그의 작품은 단순하고, 속도가 빨라졌다. 그림과 그림 사이, 생각과 생각 사이 그는 단 몇 분, 단 몇 초 만에 붓을 그었다. 그렇게 선은 그의 마음을 번개처럼 스쳐 화선지로 뛰어올랐다.

이씨 영향으로 남편(베르너 얀젠)은 내과의에서 한의사로 전문을 바꿨다. 9살 난 딸(민주)을 둔 부부는 함부르크에 산다. 이씨는 한국화가 이민주씨, 인도화가 칼리차란 굽타와 함께 전시회를 열고 있다. 제목은 ‘공명의 창’. 서울 내수동 정갤러리에서 13일까지 열린다. 그가 국내에 처음 선보이는 그림은 내면의 벽을 넘고, 또 벽을 넘어서는 자와 이를 지켜보는 자를 관조하고 있다. 깊은 우물을 들여다보는 그림과 〈넌 누구냐〉는 제목이 붙은 그림 속엔 깊이를 알 수 없는 마음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다. 이씨는 “그림을 통해 뭔가를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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