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95년 선교 독일인 루츠 드레셔
하계동 양돈단지서 빈민들과 생활
“한국 교회인 이기적” 날선 비판도
북한산에 만개한 꽃들처럼 유난히 웃는 얼굴이었다. 독일인 루츠 드레셔씨(43)였다. 24일 오후 기독교장로회총회(기장) 교육원 30돌을 기념한 감사예배와 ‘민중신학교회론’ 심포지엄이 열린 서울 강북구 북한산 기슭 수유리아카데미하우스였다. 1970~80년대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산실이었던 기장의 큰 행사답게 이 자리엔 진보적인 목사와 신학자들이 대거 모였다. 드레셔씨는 마치 행사 주최자나 되는 양 스스럼 없이 사람들과 어울렸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한국 사람 뺨치는 한국말 실력이었다. 얼굴 색만 다른 한국인 같았다. 그는 서울대생 박종철씨가 고문으로 죽은 지 한달 뒤인 1987년 2월부터 95년까지 서울에서 선교사로 살았다.
“거리에서 눈물 많이 흘렸지요. 역시 눈물을 같이 흘려야 친구가 되지요.”
한국에 처음 와서 뭐가 뭔지도 모르고 거리에 나갔다가 최루탄 때문에 평생 흘린 눈물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는 이한열군이 죽고 6·10항쟁으로 이어지기까지 거리에서 눈물로 민중과 함께 했다.
그는 당시 하계동의 돼지 키우던 양돈단지에 들어가 빈민들과 함께 살았다.
“이제 돼지는 모두 나오고, 사람들만 들어갔어요.”
그가 천막을 치고 시작해 빈민들과 함께 벽돌을 쌓았던 영은교회가 있던 양돈단지도 이젠 아파트 숲으로 변해 버렸다. 그는 기독교빈민협의회 의장을 지냈던 오영식 목사 등과 함께 그곳에서 탁아소와 공부방, 도서관, 노인 치료실 등을 운영하며 빈민들의 도왔다.
그의 한국 이름은 도여수. 이날 ‘민중신학교회론’ 심포지엄에서 집중 조명된 안병무 박사가 지어준 이름이다. 독신자로서 독일남서교회연합회에서 일하는 그는 한국 통일을 위한 세미나 등을 열어 알게 모르게 한국을 돕고 있다. 그가 속한 연합회는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기장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준 단체다. 크리스천 아카데미 간사였던 한명숙 총리도 그 단체의 후원으로 공부했다고 한다.
그는 “총리가 되기 전에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총리가 되는 바람에 바람 맞았다”며 웃었다.
“한국의 민주화를 보면 놀랍지요. 2차 대전에서 패전의 대가로 민주화된 독일보다 시민들이 쟁취한 한국이 더 훌륭하지요.”
그는 누가 뭐라든지 여전히 한국의 시민 역량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한국 교회에 대해선 일침을 놓았다.
“요즘 한국의 중산층들은 온통 자신만을 위해 교회를 나가는데, 어디 예수님이 시작한 ‘하나님 나라 운동’이 그런 건가요. 이기적이 되면 ‘예수님은 교회 안에만 있는 게 아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요.”
글·사진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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