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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뉴스

신부·목사·영화평론가 ‘다빈치코드’ 보다

등록 2006-05-22 08:44

“종교 절대성에 도발적 질문…건강한 성찰 기회”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기독교를 의도적으로 폄하한 영화’라며 안보기운동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다빈치코드>를 가톨릭 신부와 개신교 목사, 심리학자 겸 영화평론가가 함께 보았다. 상영일인 18일 서울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영화를 관람하고 토론에 나선 이들은 “영화 보다는 소설 같다는 느낌”이라고 평했다. 그러나 교리 논쟁의 극화는 종교적 도그마에 대한 문화적 상상력이 확대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았다.

참가자:김민수 신부(천주교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 총무), 정혁현 감리교 목사(기독교영상문화연구소 케노시스 대표), 심영섭(영화평론가, 심리학박사)

사회:조연현 종교전문기자

사회자= 영화 어땠나?

정 목사= 현실적이라기 보다는 신비감과 공포가 뒤섞인 흥미진진한 판타지 영화를 기대했는데 영화답지 않고 소설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심 박사= 오히려 원작의 유명세가 부담이 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다.

사회자 =이 영화가 기독교의 반발을 산 것은 오랫동안 절대화했던 믿음조차 왜곡될 수 있다는 ’도전’때문이었다. 도그마에 대한 영화적 도전은 어땠나.

김 신부 =그리스도교 신앙에 위협적인 요소들이 있기는 하다. 예를 들어 <최후의 만찬> 그림 설명은 근거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젊은 남자를 그릴 때 여성스럽게 그리는 관습이 있었다. 소설과 영화가 주장하듯이 그림 속 한 인물이 사도 요한이 아니라 막달라 마리아라면 그림 속에 제자는 11명 밖에 없다. 따라서 논리적 허점이 보이기 때문에 신앙에 위협적인 건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게 보는 이를 자극시켜서 정말 그런가 하고 공부하게 하는 교육적 효과도 있지 않나 싶다.

정혁현 목사영화 보기 두려워 말고 다양한 신앙적 상상 경험새 교회 꿈꾸는 용기를

정 목사= 중요한 건 책과 영화가 말하는 증거들이 허무맹랑하다는 게 아니라 대중들에겐 상상력에 대한 욕망이 있다는 거다. 마지막에서 티빙 경이 ’여성과 가난한 자, 고통과 억압에 빠진 사람들을 해방하기 위해 예수 신성의 허구성이 밝혀져야 한다’고 말하는데 사실 서구 기독교는 매우 억압적이고 가부장적 권위를 지탱해왔다. 그래서 이에 대한 비판적 사고와 수많은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사회자 =성경에서도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부활을 가장 처음 목격한 사람으로 나오고, 예수 당시 많은 여성이 등장하지만, 결국 12사도는 남자뿐이고, 막달라 마리아는 창녀로 매도됐는데, 소설과 영화가 ’사실’이 아니라도, 교회에 의해서 폄하된 여성과 박해받은 자들의 ’진실’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심 박사= 나는 가톨릭에서 만든 유치원서 대학까지 나왔고, 가톨릭 교회의 영세를 받았다. 살면서 교리에 대해 많은 모순을 느끼면서도, 한 번도 교리와 예수의 신성에 대해 제대로 질문해보지 못했다. 그래서 나를 둘러싸온 도그마를 뒤집어 볼 수 있었다. 예수님이 유색인종이고, 여성이 12사도에 끼일 수는 없는 것인가. 도그마의 끝까지 가서 질문해 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김 신부= 기독교 신자든 아니든 질문을 던지게 하는 건 좋은 효과다. 그런데 예수 시대에는 여성이 인간 취급을 못 받는 게 당연시되는 문화였다. 우리 시대에서 그 시대를 바라보면 말이 안 되지만 당시에는 자연스러운 삶 자체였던 거다. 당시의 문화를 이해하고 질문을 출발하는 것도 필요하다.

정 목사 =예수 이전 유대교나 기독교 역사에서 종교적 신앙에는 두 가지 상반된 힘이 공존해왔다. 기존 체제를 신성화하는 힘과 기존 체제를 넘어서 도래하는 세계를 꿈꾸는 힘이다. 신학 안에서 도그마나 금기 비판은 연구 대상이지만 신도들에게는 그것을 사유하는 게 금지돼 있는 게 현실이다.

심 박사= 요즘은 팩트(사실)와 픽션(허구)을 합친 팩션 열풍이라는데, 종교 문제가 대중문화에까지 내려오는 현상은 매우 이례적이다. 아무리 종교가 세속화된다고 해도 성가를 랩으로 부르는 일은 없었는데, <다빈치 코드>는 다르다. 종교조차 유희로 다가오는 세상이 바람직하냐 아니냐를 떠나 이제 그런 시대가 시작됐다는 단초를 이 작품에서 본다. 이 작품처럼 상업적 목적에서라도 대중문화코드 안에서 종교가 적극적으로 재해석되고 재구성될 것 같다.

김민수 신부신앙 위협요소 있지만영화의 논리적 허점이 오히려 공부하게 만들어

김 신부= <다빈치 코드>가 픽션과 팩트를 스릴있게 다루면서 현대인들의 심성을 잘 건드려 폭발성을 얻은 건 종교성의 변화와 시대가 부합된 이유도 있다.

심 박사= 제도권 교회로서는 이런 현상이 모순으로 다가올 거다. 예를 들어 <다빈치 코드> 상영을 반대하면 비신자들에게는 지나치게 보수화되는 것으로 보이고, 내버려 두면 신자들이 흔들릴 것 같은 딜레마가 있지 않나. 댄 브라운은 종교를 비판하기 위해서 소설을 쓴 것 같지는 않다. 종교적 자료를 찾기 위해서 고군분투했겠지만 작가를 매혹시킨 건 종교적 진위가 아니라 크립테스, 피보나치 수열 등 그런 것들 아닌가. 이런 것들을 엮고 상상력을 발휘해 재미난 이야기를 해준 정도라고 평가하는 게 맞을 것 같다.

김 신부= 사실 제도권 교회 안에서 비판 문화는 없다시피 하다. 신학교에서 죽은 신학을 배우기 때문이다. 그걸 배우고 나온 신부는 신자를 가르칠 때 죽은 교리를 가르친다. 그렇게 신앙 따로 삶 따로 되니까 신자들이 교회를 떠난다. <다빈치 코드>는 상업적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도 이런 종교 역사적 억압을 들추려는 면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흥미를 가진 것일 게다.

정 목사= 그렇지만 특히 개신교의 경우는 좀 다르다. 다양한 공간이 존재하는데 검열문제로 논쟁이 될 때도 보수적인 한기총만이 기독교를 대변하는 것처럼 돼 있다. 기독교 안에도 건강한 세력을 살리면서 창조적 문화풍토를 만들려는 노력을 해야 할 때다.

심 박사= 대중문화에서는 무수한 기호들이 전복된다. 대중문화에서 종교나 전통의 도상이나 기호를 뒤엎는 시도가 자주 나와야 한다.

사회자= 영화에서 사일러스는 육체를 고행해가면서 믿음을 따르려는 순수한 열정을 지닌 신앙인이다. 그런 순진한 신앙마저 독선의 희생양일 수 있다는 암시가 아니었나.

김 신부= 사일러스는 17~18세기 프랑스 얀센파처럼 예수님의 고통에 동참하는 게 신앙의 최고 극치라고 생각한 인물이다. 그는 가톨릭단체 ’오푸스 데이’의 일원으로 나오는데, 오늘날엔 오프스데이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 타인을 살해하면서까지 하느님의 이름으로 하는 것은 올바른 신앙이 아니다.

정 목사= 그러나 기독교 역사 면면히 그런 일이 있어왔다. 오늘날에도 배타적인 게 교회의 이익을 위한 것이란 사고가 개신교엔 생생히 살아있다.

심영섭 평론가종교와 대중문화 만남 금기를 깨는 쾌감더 많은 시도 나와야

심 박사= 사일러스는 주교, 즉 종교의 시스템을 진심으로 믿어 그런 짓을 저질렀다는 게 중요하다.

사회자=한기총의 반발대로 영화가 기독교를 의도적으로 폄하하려는 의도가 보이는가.

김 신부= 신자들이 현혹되고 넘어갈 수준은 아니라고 본다. 한기총의 반발은 기우이지 않았나 싶다. 마음껏 보고 그걸 통해서 신앙을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심 박사= 신앙을 단순하게 훼손한 정도다. 그러나 금기를 깨는 쾌감이 있다.’이제는 말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이 영화에서 예수가 인간이냐 신이냐 질문을 던지는 건 종교와 대중문화가 만나는 시작점에 가깝다. 그러나 댄 브라운은 개혁자인 마틴 루터 킹이 아니고 소설가일 뿐이다.

정 목사= 지금까지 대중문화에서 종교에 대한 질문은 구원을 줄 것인가 아닌가뿐이었는데 <다빈치 코드>가 대중문화차원에서 기독교에 대한 도발적 질문을 시작하는 신호탄이라면 반갑다. 기독교인들도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질문에 귀를 귀 울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다빈치 코드> 보기를 두려워하지 마라, 다양한 신앙적 상상력을 즐기고 교회가 주장하는 걸 넘어서 새로운 교회를 꿈꾸는 용기를 가져보라고 당부하고 싶다.

정리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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