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승들의 기묘한 한담’ 담은 두번째 작품 대학로 공연중
처음 본 연극 내용 오해해 공연 방해한 ‘악연’으로 입문
연출가 강영걸씨 암투병 중 투혼…배우들도 삭발 열연
조계사 주지 원담(48) 스님이 산사의 선방을 속세로 옮겼다. 서울 대학로 김동수플레이하우스에서 공연되고 있는 연극 <지대방>이다. 그곳에선 지난 12일부터 선승들의 산중한담이 흘러나오고 있다.
‘지대방’이란 선방 옆에 딸린 작은 방으로, 절에만 머물며 집중적으로 수행하는 안거에 들어간 선승들이 참선 중간 휴식할 수 있는 공동생활 공간을 말한다. 지대방은 몸과 마음을 서로 ‘기대는 방’이란 뜻이다.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선승들만의 공간인 지대방은 숨막히는 자기와의 싸움 속에서 유일하게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숨구멍인 셈이다.
이 지대방의 극본을 원담 스님이 썼다. 어떻게 스님이 연극 대본을 쓸 수 있는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지만, 실은 원담도 연극이 뭔지도 잘 모르는 그냥 스님일 뿐이었다.
고등학교 때 여자친구가 선물해준 <육조단경>을 읽고 발심해 출가해버린 원담 스님은 불과 27살에 우리나라 최대 사찰 해인사 강원에서 강사를 했다. 학승들을 가르치며 1년 반을 보낸 뒤 그는 바랑 하나 달랑 메고 홀연히 길을 나섰다. 버스를 타고 부산 시내를 지나던 그는 <관객 모독>이란 연극 포스터를 보고, 불현듯 호기심이 발동해 연극을 보러 들어갔다. 연극은 객석의 관객을 가장한 배우가 무대의 배우와 싸우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하필 객석의 배우가 원담 스님의 옆에 앉아있었다. 연극이 시작되자마자 무대의 배우와 말다툼을 벌이는 이 관람석의 배우를 보고, 연극 한 번 본 적이 없는 원담 스님은 “웬만하면 참으시라”고 옷깃을 잡아당겼다. 그 배우는 갑작스레 스님으로부터 연극을 제지당한 것에 당황한 나머지, 대본을 몽땅 까먹고 말았다.
연극과 원담 스님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무대와 삶을 넘나드는 연극에 충격을 받은 원담 스님은 그 이후 선객으로 선방을 다니면서도, 안거가 끝나면 연극을 보러 다녔다. 그러다 연극의 매력에 푹 빠진 그는 80년에 군부가 사찰을 짓밟은 10·27 법난을 다룬 <그건 목탁 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란 원고를 썼다. 이 대본은 1996년 <뜰 앞의 잣나무>란 이름으로 대학로에서 공연됐다.
이어 2탄이 <지대방>이다. 연극계의 거장인 연출가 강영걸씨는 암 투병 중에 목숨을 걸고 무대에 올리는 투혼을 발휘했다. 또 영화 <동승>에서 스님 역을 맡았던 오영수와 드라마 <한명회>로 유명한 정진이 노승 허운 스님으로 열연하는 등 명로진, 지춘성, 배수백, 이태환 등이 삭발한 채 선승들의 기기묘묘한 한담을 쏟아내고 있다.
“지대방은 참선 수행을 하는 방이 아니고, 세속의 방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수행을 못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네 일상의 모습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승속의 경계를 넘나들며 수행해 온 스님의 말처럼 <지대방>은 산사만 맴돌다 2년 전 조계사 주지로 온 그의 삶을 닮았는지 모른다. <지대방> 공연은 7월 9일까지 계속된다.(02)3443-1010.
글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사진 극단 천지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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