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허가 받지 않은 ‘여성 주교’ 크리스틴 마이어 강연
오스트리아에 사는 ‘여성 주교’ 크리스틴 마이어(50)가 한국을 찾았다. 가톨릭 베네딕도수녀회에서 5년 동안 생활한 가톨릭 수도자 출신으로 25년 전 결혼해 중학교 교사로 살아가는 그는 2002년 ‘교황청으로부터 허가받지 않은 채’ 사제로 서품을 받아 6개월 뒤 교황청으로부터 파문당했다. 로마 교황청은 아직까지 여성 사제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가 방한한 25일엔 우연히 대한성공회 오인숙 카타리나(66)수녀가 사제의 전단계인 부제로 서품 받는 날이었다. 마이어는 도착하자마자 서울 중구 정동 대한성공회주교좌성당으로 달려가 오 수녀의 부제 서품을 축하해주었다. 로마 가톨릭과 달리 성공회는 ‘여성 사제’가 수천 명에 달하고, ‘여성 주교’까지 탄생한데 이어 여성수도자(수녀)가 사제 서품을 받기에 이르렀으니 그로서는 부러운 일이었다.
최근 ‘여성 사제’는 소설과 영화 <다빈치코드>를 통해 주유 이슈로 부각했다. <다빈치코드>에선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최후의 만찬’에 참여한 12사도 중 한명이자, 예수의 신부이자 예수의 가르침을 잇는 ‘최고의 사도’로 묘사되고 있다.
파문 당한 채 가톨릭 안에서 운동
여성사제는 1962~65년 교황청의 ‘2차 바티칸공의회’ 때 독일인 신학자 2명이 도입을 청원하면서 불타 올랐다. 오스트리아에서 1995년 ‘우리가 교회다’라는 운동이 시작된데 이어 99년엔 아일랜드에서 ‘지금이 바로 그 때다’라는 회의가 열렸다. 2002년엔 여성 7명이 아르헨티나 출신의 종파주의 대주교인 루물루 브라스치 주교에 의해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이들은 어느 교구에도 속하지 않은 강물을 택해 독일과 오스트리아 국경을 흐르는 다뉴브강 위 배에서 서품식을 거행했다. 이들 가운데 마이어 등 3명은 다음해 주교 서품을 받았다. 2005년 7월엔 캐나다와 미국의 접경지역인 세인트 로렌스강 위 배에서 9명이 사제 또는 부제 서품을 받았다. 지금까지 가톨릭의 여성수도자를 비롯해 훨씬 많은 수가 사제 및 부제 서품을 받았지만, 상당수는 신분을 노출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온 마이어는 지난 26일 오후 2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수녀 등 70여명이 모인 가운데 ‘교회 여성과 제자 직분’에 대해 강연했다. 이어 이날 오후 7시 인근 품사랑 카페에서 4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종교 안에서의 여성 지위’에 대해 주관자인 아시아신학연대센터의 황경훈 실장의 사회로 불교 스님, 원불교 교무, 개신교 목사, 신학자 등 이웃종교인들과 폭넓은 대화를 나눴다. 이 대화에선 먼저 마이어에 대해 “왜 출교됐는데도 가톨릭 안에서 그런 운동을 하느냐”는 질문으로부터 시작됐다. 기독교교회협의회 여성위원장인 한국염 목사는 “다른 종파를 만들어 할 수 있는데 왜 가톨릭 안에서 하느냐”고 물었다. 한 청년은 “그 에너지는 새로운 공동체를 만드는데 쓰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2004년 세계여성불자대회 추진위원장을 했던 본각 스님(중앙승가대 교수)은 “나와서 만드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역사와 권위를 가진 가톨릭에서 그런 운동을 하는 용기가 대단하다”고 말했다.
‘부부교수 전임교수 임용 불가’라는 성차별 조항에 의해 감신대의 재임용에서 탈락한 강남순 박사는 “감리교에선 1931년에 여성의 목사 안수를 허용했지만, 이와 달리 남성 중심의 시스템엔 변화가 없다”며 “가톨릭의 (성차별적) 신학·교리 토대가 변화지 않는 상태에서 제도만 도입될 경우 기존 시스템을 더욱 강화시켜줄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 공동대표이기도 한 원불교 이선종 교무는 교단 출범 부터 남녀 평등인 원불교의 시스템을 소개한 뒤 “우주엔 음양이 있고, 가정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듯이 남녀가 동등하다는 것에 대해 여성 스스로 깨어나는 데서 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차별적 교리 함께 정비해야
마이어는 결혼과 사목을 겸하는 것에 대해 “유럽의 상황에 따른 선택으로, 유럽에서도 자신이 독신으로 살아갈 지, 결혼과 겸할 지 선택 한 뒤 그 선택에 충실한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오인숙 카타리나 부제는 “마이어는 유럽 상황에 맞게 운동을 벌이므로, 한국에선 우리 상황에 맞는 운동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수녀들은 여성 사도직에 대해 다시 한 번 숙고할 기회를 주고, 희망을 준 것에 대해 마이어에게 감사를 표했다.
마이어는 “비록 공식 주교는 아니지만 (교구 내에서)에서 주교와 사제들이 하기 어려운 일을 자신에게 부탁하는 등 적어도 절반의 사제들이 자신을 인정하고 있는 게 현실이고, 말은 않지만 많은 바티칸의 고위층들도 자신을 돕고 있다”며 희망의 메시지를 남겼다.
글·사진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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