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문정동성당 김홍진 신부 /
지난 25일 서울 송파구 문정동 주택가에 우뚝 서 있는 문정동성당에서 주임 김홍진(50) 신부가 맞는다.
“우리 동네요? 잘 사는 동네에요.”
통상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잘 사는 동네’란 돈 많고, 큰 집과 비싼 차를 소유하고, 지위와 학력이 높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잘 사는 동네’에 있는 성당도 마찬가지다. 김 신부가 말한 ‘잘 사는 동네’란 어떤 곳일까.
문정동 성당 입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낮은 문턱이다. 계단 옆 길고 완만한 통로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을 위한 길이다. 지난 2월 김 신부가 이 성당에 부임해 힘겹게 계단을 올라오는 장애인을 보고 즉각 화장실 문턱을 없애는 공사와 함께 낸 통로였다. 바로 장애인과도‘함께 잘 살기 위한’ 길이었다.
문정동엔 88장애인올림픽 때 장애인들이 대거 입주한 아파트와 장애인복지시설 등이 있어서 장애인들이 적지 않다. 이 가운데 가톨릭 세례를 받은 사람도 꽤 되지만 이들은 성당과 거리감을 느끼며 멀어져갔다.
성당을 떠나갔던 장애인들이 휠체어로 하나 놓는다고 다시 발길을 돌릴 리는 만무했다. 소외된 사람들이 가장 먼저 감지하는 것은 배려와 시선으로 느껴지는 ‘분위기’였다. 성당에 와서 마치 못 올 곳에 온 것 마냥 어울리지 못한 채 주눅들어 있는 장애인들에게 성당 신부와 수녀들이 달려가 먼저 안부를 묻고, 기도를 해주었다. 또 매달 한 차례씩 장애인들을 위한 미사를 드리고, 미사 뒤 식사를 대접하며 대화의 자리를 마련했다.
“선천적인 장애아 뿐 아니라 교통사고나 병으로 장애를 갖게 된 사람들도 자신감을 잃고 세상과 단절된 채 외롭게 살아가는 이들이 많아요. 밖으로 나와야 고통과 외로움도 나누고, 짝을 만나 시집 장가도 갈 텐데 말이죠.”
장애인들의 결혼까지 챙겨주는 ‘독신’사제의 배려가 깊다. 김 신부는 다음달부터 신앙에 관계 없이 이 지역 장애인들이 매월 이 성당에서 모여 교제할 수 있도록 ‘만남의 장’을 제공하기로 했다. 그렇게 되면 휠체어를 탄 10명 가량의 신자 외에도 20~30명의 장애인들이 더 어울릴 것으로 보인다.
김 신부의 ‘함께 살기’는 장애인에게만 그치지 않는다. 인근 화훼단지 비닐하우스 촌에서 살아가는 빈자들을 성당으로 초대하는가하면 성당 안에 마을 문고를 조성해 인근 주민들이 언제든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성당 휴게실에서 쉬며 독서를 하고, 책을 빌려 볼 수 있도록 했다.
장애인·빈민 성당‘문턱’ 낮춰 외로움 나누고 세상과 소통 도와“잘 사는 사람만 교회 찾는 건 한국 가톨릭의 정체성 위기”
1999년부터 서울대교구 사회사목부 사무국장과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장, 한마음한몸운동본부 본부장,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총무 등을 맡아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일 해온 김 신부는 사회복지시설에서 소외된 이들을 돕는 것 이상으로 성당과 마을에서 ‘함께 하는 것’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한다. ‘잘 사는 사람’들이 자기들끼리만 뭉치고, 약자에 대해서는 멀찍이 거리를 둔 채 시혜를 베풀어 스스로 위안을 삼는 경우가 많은데, 교회도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고 진단하기 때문이다.
이웃 종교에 비해 평균 소득과 학력 수준이 갈수록 높아지는 가톨릭 신자 분포에 대해서도 김 신부는 “자부심을 가질 일이 아니라 ‘한국 가톨릭의 위기’임을 절감해야 한다”고 말했다.
“살만큼 사는 사람들만 가톨릭교회로 온다는 것은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교회 지도자와 신부들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을 방기한 결과인 셈이지요. 이것은‘정체성의 위기’로, 우리가 분명히 성찰해야 할 일입니다.”
김 신부는 지난 1월 ‘한국희망재단’을 설립해 집 없는 인도 달리트(불가촉천민)들과 방글라데시 빈민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일을 시작했다. 얼마 전부터는 해외 입양아 출신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안착하지 못한 채 깊은 상처만 안고 돌아오지만 모국어도 못해 방황하며 떠돌고 있다는 아픈 소식을 듣고 이들의 쉼터를 마련해 돕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환경오염에 일조하고 싶지않다며 8년 전부터 자가용도 없애버린 ‘부자동네의 가난한 신부’가 오늘도 마을버스를 타고, ‘잘 사는 사람들’ 밖의 사람들을 끌어안기 위해 분주히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글·사진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