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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뉴스

가톨릭 125명 ‘성인’으로 부활하나

등록 2006-09-19 21:19

윤지충등 순교자·최양업 신부 현장조사 마무리

이르면 내년말 교황청 제출…2010년 결실 기대

한국 가톨릭이 김대건 신부 등 103위의 성인 외에 추가로 125위를 성인으로 모시기 위한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했다. 성인품에 오르기(시성) 위해서는 ‘준성인’에 해당하는 복자품에 올라야(시복)한다. 시복시성은 한국가톨릭의 자체적인 예비심사와 로마 교황청 시성성의 본심사 등 두 번의 재판을 거쳐 결정된다.

주교회의 시복시성특별위원회(위원장 박정일 주교)는 시복 대상자들의 성장지와 무덤 등에 대한 현장조사를 최근 마무리 짓고, 윤지충 등 124명의 순교자와 최양업 신부를 합쳐 모두 125위의 문서 정리과 번역 작업에 들어갔다. 1984년 시성을 받은 김대건 신부에 이어 한국 가톨릭 두 번째 신부인 최양업은 목숨을 잃은 다른 124위와 달리 순교하지 않았기에 ‘증거자’로 따로 분류된다. 시복 재판 중인 이들은 ‘하느님의 종’으로 불린다.

이들이 ‘하느님의 종’에서 복자품에 오르기 위해선 ‘하느님의 영원한 세계에 들어갔다’는 증거를 인정받아야 한다. 가톨릭에서 증거의 기준은 기적으로 삼고 있다. 또 복자품에 오른 뒤에도 기적이 다시 나타나야 성인품에 오를 수 있다. 그러나 신앙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순교는 그 자체가 기적으로 인정된다. 최 신부의 경우는 기적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시성시복특별위원회의 총무인 류한영 신부가 125위의 시복을 청원하고, 위원장인 박정일 주교가 재판관이 된 시복재판에서 시복 적격자 여부가 가려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검찰관은 대상자의 순교사실이나 덕행, 기적 등을 놓고, ‘복자나 성인이 될 수 없는 이유’만을 집중 추궁하기 때문에 ‘악마의 변호인’으로 불린다.

이런 재판을 거친 뒤 내년 말이나 2008년 초 재판기록을 교황청 시성성에 제출하고 시성성에서 신학검열관과 역사 전문가 등으로 재판부를 꾸려 재판을 열면 2010년 내로 시복자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류한영 신부는 “성인이 일본엔 40여분이 있고 205명의 복자가 있으며, 베트남엔 백여분이 넘지만, 수가 중요한 것은 아니고,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세계에 대한 선포로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103위 시성 때 자료 없어 빠졌던 초기 순교자들125위는 누구인가?

이번 시복대상자엔 1984년 103위 시성 때 증빙자료가 거의 없어 명단에서 빠졌던 초기 순교자들이 대거 포함됐다. 103위로 시성된 이들은 주로 기해, 병오, 병인 박해 때의 순교자들이다. 첫 박해인 신해박해(1791)와 신유박해(1801년) 순교자들은 제외됐다. 따라서 이번 시복대상자들은 첫 순교자인 윤지충, 정약종, 최양업 신부의 어머니 등 103위 성인의 조부모와 부모를 포함한 윗세대들이 대부분이다.

윤지충은 25살에 진사에 급제한 뒤 사촌인 정약용 형제들에 의해 천주학 신자가 되었다. 1791년 모친상을 당한 그는 자신이 전교한 외종형 권상연과 상의한 뒤 종래의 관습대로 상복을 입고 통곡하되 위패를 모시거나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이에 따라 패륜 무도한 불효자로 찍혀 권상연과 함께 전주 남문 밖에서 참수 당했다. 윤지충과 권상연은 가톨릭 신앙 때문에 공식적으로 순교당한 최초의 인물들로 이번 시복 대상에 포함됐다.

다산 정약용의 형인 정약종은 처음에 천주학을 접하고서도 입교를 망설였다. 하지만 1786년 세례를 받은 뒤엔 신해박해로 형제와 친인척들이 교회를 떠나도 동요하지 않고 중국인 선교사로 이번에 함께 시복대상자가 된 주문모 신부를 도우면서 기초 신학서인 <주교요지>를 썼다. 정약종은 1801년에 관가에 붙잡혀 서소문 밖 형장으로 끌려갔다. 그는 참수대 앞에서 형리가 오랏줄을 풀어주자 “흥숭하올 천지 만물의 대주재자이신 분이 당신들을 창조하셨으니 모두 회개하여 당신들의 근본으로 돌아와야 하오. 그 근본을 어리석게 멸시와 조솟거리로 삼지 마시오. 당신들이 수치와 모욕으로 생각하는 그것이 내게는 곧 영원한 영광이 될 것이오”라고 한 뒤 하늘을 우러러보며 칼을 받았다. 망나니가 놀라 목이 단칼에 잘리지 않자 벌떡 일어나 앉아서 십자성호를 긋고 다시 처음 자세로 되돌아가 마지막 칼을 받았다. 두 달 뒤 같은 장소에서 순교한 장남 정철상도 이번 시복 대상자다. 정약종이 순교한 38년 뒤인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한 부인 유조이와 아들 정하상, 딸 정정혜는 이미 103위 성인품에 올라 있다.

시복대상자엔 최양업 신부의 어머니인 이성례도 포함돼 있다. 그가 당고개에서 참수 당할 때 박해로 집안이 풍비박산이 돼 걸인이 된 어린 아들이 동냥을 해 모은 돈과 곡식을 가지고 망나니에게 건네 주며 “우리 엄마 안 아프게 단칼로 베어 주셔요”라고 부탁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들의 순교 모습은 최근 발간된 이충우의 한국성지순례기 <피어라 순교의 꽃>(분도출판사 펴냄)에서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조연현 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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