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선불교-인도불교 논쟁 다룬 책 ‘까말마씰라의…’
네팔서 수행중인 한국 선승 출신 중암스님 펴내
‘선(禪)불교’가 기존의 ‘인도 불교’와 논쟁에서 무참히 패배했다면. ‘선불교’를 절대화하며, 때론 석가모니의 여래선보다 중국 선사들의 조사선을 더 높게 평가하는 우리나라 선승들로선 결코 수긍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8세기말 티베트에서 선불교의 참패는 역사적 사실이었다. 삼예사의 대논쟁에서였다. 이 논쟁을 다룬 책이 <까말라씰라의 수습차제 연구-삼예의 논쟁 연구>(불교시대사 펴냄)라는 책으로 출간됐다. 이 책의 저자는 우리나라 선승 출신으로 14년 간 인도와 네팔 등의 티베트 사원에서 티베트불교를 수행해온 중암 스님이다.
8세기말 인도와 중국 사이에 있는 티베트에선 인도의 초기불교와 중국의 선불교가 격돌하고 있었다. 선불교는 인도불교보다 늦게 진출했지만 “견성(깨달음)이 곧 성불”이라는 선불교 ‘돈오 사상’은 엄청난 매혹을 지녀 티베트에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선승 마하연은 왕비까지 포교해 중국의 선불교는 왕비의 후원을 받으며 급격히 번성하고 있었다. 마하연은 “몸과 말의 법행(法行·진실한 행동)이 필요치 않다. 신구(身口·몸과 말)의 선업(善業·착한 일)에 의해서는 성불하지 못한다. 불사(不思·생각하지 않음)와 부작의(不作意·대상에 대한 마음의 작용을 하지 않음)를 닦음으로써 성불한다”는 가르침을 펼쳤다. 좋은 일 많이 한다고 성불하는 게 아니고, 분별없이 생각을 쉬어 무념에 들어가야 성불한다는 것이다. ‘단박에 부처가 된다’는 이런 가르침은 보시, 지계(계율을 지킴), 인욕(참음), 정진, 선정, 반야(지혜) 등 육바라밀 수행을 통해 성불로 나아가는 인도불교의 가르침과 상반 되는 것이었다. 선불교로 인해 기존의 수행 체계가 허물어질 위기에 놓여 왕이 이를 금하려하자 중국의 선승들은 자해와 자살을 감행하며 이에 항거했다. 그러자 왕은 자신과 수많은 스님, 대중들 앞에서 양쪽이 삼예사에서 논쟁을 벌이도록 하고, 논리가 수승한 쪽에게 논리가 부족한 쪽이 교만을 버리고 법답게 꽃다발을 바치도록 했다. 그래서 인도불교의 대표적인 까말라씰라와 중국의 선사 마하연이 논쟁을 벌였다.
인도불교 대표와 선불교 대표 ‘돈오사상’ 삼예사 공개대논쟁선불교 패배뒤 티베트 포교금지, 한국 선불교에도 큰 자극 될듯
논쟁에서 마하연은 “십법행(十法行·보시하고 설법을 듣고 경을 외는 것 등)은 선근이 없는 우둔한 자들을 위해서 설해진 것이다. 근기가 날카로운 자들에게는 흰 구름이든 검은 구름이든 그 둘 전부가 또한 태양을 가리는 것과 같이, 선악의 두 가지도 역시 장애가 된다. 그러므로 (일체를) 전혀 사유하지 않고, 전혀 분별하지 않고, 전혀 관찰하지 않는 것은 곧바로 법성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까말라씰라는 “(일체를) 전혀 사유하지 말라고 하는 그것은, 여실히 분별하는 반야를 버리는 것이다. 제법의 본성인 그 무분별의 법계는 여실히 관찰하는 반야로써 마땅히 깨닫는 것이다”고 반론했다.
왕은 그 자리에서 사부대중으로 논쟁을 확대시켰고, 논쟁 끝에 중국의 선승들은 꽃다발을 던져 패배를 인정했다. 그 때 마하연의 시자인 쪼마마는 분을 못 이겨 자기의 성기를 짓이겨 자살했다.
이 자리에서 왕이 티베트에서 선불교의 포교를 금지함에 따라 선승들은 중국으로 돌아가고, 오늘날의 티베트불교가 정착하게 되었다.
‘믿음만으로 구원을 받느냐’, 아니면 ‘믿음을 기반으로 한 선행을 수반함으로써 구원에 이르느냐’는 그리스도교의 구원 논쟁에 비견할 만한 돈-점(頓-漸) 논쟁은 우리나라에서도 있었다. 성철 스님이 돈오돈수(頓悟頓修·단박에 깨달으면 이것이 곧 성불이므로 더 닦을 것이 없음)를 주창하며, 보조국사의 돈오점수(頓悟漸修·깨달은 뒤에도 점차 닦아나감)를 비판해 논쟁이 격화된 바 있다.
김성철(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과) 교수는 추천사에서 “티베트 원전을 능숙하게 다루면서 전문적인 불교수행론을 치밀하게 풀어내는 저자의 연구역량과 깊은 안목이 그저 놀라울 뿐”이라며 “본서를 통해 소개되는 선불교에 대한 티베트 학승들의 비판과 까말라씰라의 점문적(漸門的·차례 차례 들어감) 수행론은 역설적으로 우리 선불교의 지반을 굳건히 다지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썼다. 기자는 5년 전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 히말라야의 산간마을 맥레오드간지에 달라이라마의 인터뷰를 위해 방문했다가 길을 잘못 들어 골목길을 헤매던 중 한 ‘한국인 스님’과 마주쳤는데, 그가 바로 중암이었다. 처음엔 “한국인이 아니다”며 사람과 만나는 것을 극구 꺼리던 은둔수행자를 붙잡고 따라가 꼬박 하루 동안 그의 처절한 수행기를 들었는데, 이번에 티베트 원전을 한국어로 번역한 최초의 책을 내놓은 것이다. 그가 신앙의 조국인 ‘한국 선불교’에 큰 도전이 될 만한 책을 안겨준 것이다. 중암은 지금 네팔에 있는 한 티베트 사원에서 수행 중이다.
글·사진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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