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지구상에서 불교와 그리스도교가 비슷한 세력으로 공존하고 있는 유일한 나라다. 그런데도 흑백논리와 근본주의가 지배하면서 성직자들조차 상대 종교에 대해 무지하기 그지 없는 게 현실이다. 또 이웃 종교를 배우고 이해하고 협조하려한 선각자들에겐 뭇매를 가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이웃종교와 대화한 세계적인 불교학자 불연 이기영 박사(1922~96)와 감신대 학장을 지낸 일아 변선환 박사(1927~95)의 존재는 더욱 특별하다. 3일 10시 서울 장충동 동국대 90주년기념문화관에선 이기영 박사 10주기 추모 국제학술세미나가 열린다. 또 변선환의 제자로서 불교와 동양사상에 대해 가장 이해가 깊은 목사 중 한명으로 꼽히는 이현주 목사가 그리스도교와 이웃 종교를 회통시키는 ‘젊은 세대를 위한 신학강의’ 시리즈 책 세권을 동시에 출간해 완고한 종교의 틀을 넘어선 회통의 상쾌함을 전해주었다.
신학 최고봉과 교류, 종교간 화해길 제시불교학자 이기영 10주기 세미나
이기영의 뒤를 이은 정병조 한국불교연구원 원장은 ‘현대 한국불교와 불연’이란 기조강연에서 한국불교에서 ‘비교 종교학’을 연 그의 업적을 기린다.
황해도에서 태어난 이기영은 경성제국대학에 다니다 일제의 학병으로 끌려가 싱가포르에서 포로로 강금되었다가 귀국했고, 이어 6·25전쟁으로 집안이 풍비박산 되는 고난을 겪었다. 전후 대구 효성여고 교사로 근무했던 그는 1954년 유럽으로 유학을 떠났다. 유학을 알선해준 이는 효성여대 초대학장이던 전석재 신부였다. 1960년대 귀국한 그는 동국대를 중심으로 활동했지만 가톨릭 재단의 후원으로 유학을 다녀왔기에 미심쩍은 눈길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그는 원효 연구자로서 탁월한 업적을 인정받았고, 학자로서는 드물게 ‘구도회’란 수행단체를 이끌었다.
그가 1989년 발표한 ‘원효사상에 있어서 궁극적인 것(불교와 기독교 둘인가, 하나인가)’은 심도 있는 비교종교적 저술로 불교와 기독교 양쪽에 큰 반성의 계기를 준 수작으로 평가받았다. 기독교에 대해 신학자 못지 않는 깊이를 지녔던 이기영은 1991년 ‘불교와 기독교’라는 국제 세미나를 열었고, ‘불교와 기독교의 대화총서’를 펴내 종교인들이 외눈박이의 근시안에서 벗어나게 했다.
그는 민중신학의 최고봉인 안병무 한신대학장과 교유하며 한신대에서 불교를 가르쳤고, 변선환과 수많은 대화를 했다. 변 박사는 이후 “기독교만이 유일한 구원이라는 교리는 신학적인 천동설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기독교는 더 이상 정복자의 종교가 아니라 전체 인류의 구원을 위해 종교 간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고 종교 간 화해와 다원성을 주창했고, 결국 종교재판을 통해 ‘출교’ 당했다.
정병조 원장은 “다종교의 현실을 인정하면서 평화, 믿음, 자유 등을 주제로 하는 진지한 대화의 창구가 필요하다”며 “그 방법의 효시는 이기영에 의해 제시되었다”고 그를 기렸다.
도그마 넘어선 종교 이야기하듯 풀어내이현주 목사 ‘신학강의’ 출간
“너희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니까 불교를 믿어라. 이렇게 말한다면 기분 좋겠어? 나쁘겠지? 어린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저만 알지? 너희도 그랬어. 저밖에 없는 줄 알아. 그러나 차츰 자라면서 자기 좋을 대로만 해가지고는 세상을 행복하게 살 수 없구나. 이렇게 나 아닌 상대방을 깨닫게 되는 것이 바로 어른스러워지는 거거든?” 신학강의(삼인 펴냄)는 이 목사가 15년 전 어린 세딸에게 얘기한 것들을 다듬어 펴낸 것이다. <예수의 삶과 길> <그리스도의 몸, 교회> <탈출의 하나님>은 그래서 누구나 쉽게 기독교와 동양사상의 진수를 체득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어떤 선교사가 아프리카의 원주민들한테 ‘선은 좋은 것이고, 악은 나쁜 것이오’하고 말하니, 추장이 웃으면서 ‘선은 내가 다른 남자의 마누라를 빼앗아 오는 거고, 악은 다른 남자가 내 마누라를 빼앗아 가는 것이군 그래!’ 했단다.”
흑백논리를 넘고자하는 그의 얘기는 단숨에 종교의 도그마까지도 넘어선다.
“만일 그리스도교가 우리에게 그리스도인 아닌 어떤 ‘인간’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면 우리는 그 그리스도교를 버려야 해. 왜냐하면 그리스도교가 사람을 위해 있는 거지 사람이 그리스도교라는 한 ‘종교’를 위해 있는 건 아니니까.”
그는 예수 그리스도와 전체주의의 차이를 분명히 한다. 전체주의는 전체라는 미명 아래 누군가를 죽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이 죽는다는 것이다. 그는 또 “예수님의 해방 선언은 강도를 때려잡는 세상에서 강도를 만들지 않는 세상으로 변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