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전북 익산 원불교 중앙총부에서 만난 최고지도자 경산 장응철 종법사(65)의 얼굴은 보름달처럼 둥글고도 환했다. 원불교의 출가·재가 신자 2만여명과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이명박 전 서울시장,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 등 주요 정치인들까지 총출동한 대사식을 마치자마자 총부 내 종법사 거처인 ‘조실’로 돌아온 그를 만났다.
원불교 대사식 경산 장응철 종법사 새 지도자로“욕망의 폭발 시대 제어할 ‘정신 자주력’ 필요”
교단 창립 91년째로서 ‘개교 100돌 맞이’를 준비하는 원불교를 6년 간 이끌게 된 그는 먼저 원불교인들을 향해 “도미(道味·도의 맛)를 즐기며 ‘마음 낙원’을 누리자”면서 “이 천지에 넘치는 은혜의 물결인 대덕을 발견하고, 그 덕의 바람을 불려서 이 사바세계를 낙원세계로 인도하자”고 말했다. 수행자에게서 풍기는 도와 덕으로 이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이제 그는 원불교 지도자로서뿐 아니라 국내 4대 종단 지도자의 한 명으로 역대 원불교 종법사들처럼 우리 사회의 ‘정신 지도자’의 구실도 해야 할 터다. 그는 한국 사회를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
“모두가 마음을 도둑맞고 사는 것 같다. 돈에 빼앗기고, 권력에 빼앗기고, 향락에 빼앗기고 그것들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예전은 ‘욕망 억제의 시대’였다면, 지금은 ‘욕망 폭발의 시대’다. 욕망에 제동장치를 달아서 정당한 의욕은 북돋아주고, 부당한 탐욕은 자제하도록 ‘정신의 자주력’을 얻도록 하는 일이 시급하다.”
그는 “나만 옳고, 상대는 잘못됐다”는 이분법과 약육강식의 ‘힘의 논리’만이 지배하며 원한이 더해가는 세상에 대한 원불교식의 처방도 제시했다.
“교조 소태산 대종사께선 ‘강자 약자 진화의 요법’을 내놓았다. 세상은 늘 강자와 약자가 있고, 서로 의지가 되고 바탕이 되는데, 윗사람은 아랫사람 보기를 친자식같이 하고, 아랫사람은 윗사람 보기를 부모같이 하면서 강자는 약자를 북돋아주며 이끌어주고, 약자는 강자에게 무조건 대항만 하려들지 말고, 스스로 힘을 기르고 희망을 키우며 인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이 성공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그는 “노사와 남북, 동서, 보혁 등 모든 갈등과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서로를 진화시키는 이 도법이 절실하다”고 권했다. 그는 북핵문제 등으로 위축된 우리 민족에게 희망을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소태산 대종사께서 금강산에 다녀온 뒤 ‘금강산이 세계에 드러나면, 우리나라가 새로운 아침의 나라가 된다’고 했다. 이 나라가 ‘정신의 지도국’이 되고, ‘도덕의 부모국’이 된다는 것이다. 온갖 어려움이 있다지만 우리는 희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끝으로 대사식장의 경축 분위기를 온 국민과 나누기 위한 법담을 부탁하자, 그는 따뜻한 미소로 답했다.
“마음 편히 하세요. 안심하는 것이 바로 극락입니다. 분수에 맞지 않는 생각을 하니, 괴로운 것입니다. 생각을 할 때나 말을 할 때나, 일을 할 때나 ‘온전한 정신’으로 하면 모든 게 평안하게 잘 되어갈 것입니다.”
익산/글·사진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종권 다툼없는 ‘아름다운 진퇴’3대 종법사 스스로 물러난뒤 전통 지켜
대사식(戴謝式)은 전임 종법사가 물러나고 새 종법사를 봉대한다는 원불교의 의식 용어다. 국내에서 태생한 종교의 대부분이 교조 이후 권력과 재산 다툼으로 인해 사분오열되고, 주요 종단들까지 종권 다툼이 끊이지 않는 현실에서 원불교 대사식은 다른 종단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이 전통은 3대 대산 김대거 종법사(1914~98)가 1994년 종단 안팎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종법사직에서 물러나 소박한 삶으로 돌아가면서 정착되기 시작했다. 대산의 퇴임으로 94년 치러진 선거에선 불과 쉰여덟살의 좌산 이광정 종사가 종법사로 추대됐다. 당시 같은 종법사 후보로서 선거를 치렀던 상산 박장식 종사는 여든여덟살로 교단 최고 원로였으나 선거 결과가 나온 즉시 좌산 종법사에게 오체투지로 절을 해 모든 종도들의 눈물을 자아냈다. 이날 퇴임해 상사로 추대된 좌산 상사도 종도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홀연히 퇴장했다.
대사식에서 퇴임 법문을 한 좌산 상사는 눈물을 훔치는 종도들에게 “경산 종법사를 중심으로 자비와 지혜의 교법을 세상에 실현하겠느냐”고 물어 우뢰와 같은 응답을 들은 뒤 자신은 “이제 자연 속에서 남북통일과 세계평화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말하고 총부를 떠났다.
조연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