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 불교적 깨달음 담아
연극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 불교적 깨달음 담아…
사람들에겐 자기만의 작고 어두운 토굴이 있다. 어느 누구는 원치 않게 자신을 떠나던 엄마의 뒷모습을 본 이후 세살짜리로 동굴 속에 남아 눈물 흘리며 울고 있고, 누군가는 아버지에게 죽도록 폭행당한 어린 시절 기억 안에 갇혀 겨울잠을 자며 깨어나지 못한다. 또 누군가는 학창시절 왕따나 시련의 상처 속에서, 다른 누군가는 박대나 배신, 실패의 아픔들 속에 꼭꼭 숨어버린다. 이들의 육신은 대로를 걷고 있을지라도, 그의 영혼은 그런 상처 속에 웅크리고 앉아 벌레를 까고 또 까며 상처를 키워간다. 온 몸과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그날까지.
서울 중구 정동 덕수궁 옆 영국대사관 입구 ‘제일화재 세실극장’에서 극단 천·지·인이 공연하는 연극 <그것은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의 주인공 도법 스님(연운경 분)도 그렇게 어둠 속에 있었다. 도법 스님은 늦깎이 출가자이지만, 일찍이 출가한 도반 탄성 스님이 부러워할 만큼 정진을 잘하던 선승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겉모습이었고, 그의 영혼은 과거의 한 순간에 갇혀있었다. 미대교수자이자 유명한 조각가였던 그는 남편과 딸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어느 날 꽁꽁 묶인 남편과 딸이 보는 앞에서 겁탈을 당한 뒤 출가하게 된다. 수행 정진만 하던 그는 큰스님으로부터 봉국사의 불상을 조성하라는 명을 받고 조각에 나섰으나 강간범의 망령(최규하 분)에 시달리다 3년 가까이 조성해온 불상을 파괴하고 만다.
이 와중에도 원주 스님(윤순옥 분)의 푼수 연기와 막내 월명 스님(손성림 분)의 풍자 섞인 대사에 객석은 웃음의 도가니에 빠져든다. 그러나 웃음이 가져다준 해탈도 잠시. 관객들은 곧 자기만의 동굴 속에 들어가 도법 스님의 고통에 동변상련의 아픔으로 눈물 짓는다. 객석의 허공을 가르는 긴 한숨이 중생계의 가득 찬 고통의 바다를 웅변해준다.
강간범의 망령과 싸우는 도법, 망령조차 부처로 만드는 해탈
극중에서 도법은 마침내 조각칼로 자신의 눈을 찔러버리고, 그 상태에서 망령 같은 불상을 조성하고, 세상을 뜬다. 그러나 도법이 찢은 것은 눈이 아니라 ‘상처 입은 순간의 이미지’였고, 그가 죽인 것은 ‘아픈 기억’이었다. 또한 목탁구멍 같은 어두움을 지옥처럼 벗어나려고만 했던 그는 그 상처를 껴안았고, 그 순간 망령조차 부처가 되고, 구멍 속에 갇혀있던 그도 해탈 자유인이 되었다.
동국대 인도철학과 출신인 이만희(52) 작가가 불교적 각성을 담아낸 대본에 암투병 중인 연출가 강영걸(63) 감독의 투혼이 만난 무대에선 매일 아침 108배를 하면서, 몸과 마음을 다진다는 연운경씨 등 배우들이 혼신의 열정으로 목탁구멍 속에 숨어 있는 관객을 흔들어 깨운다. 관객이 반응이 점차 커지자 천·지·인은 14일부터 큰스님과 탄성 스님 역 배우를 각각 강애심씨와 김희정씨로 바꿔 내년 1월 14일까지 연장 공연에 돌입했다. 신도증을 가진 불자들에겐 공연기간 내내 같은 일반석 관람료 3만원에서 1만원을 할인해 준다. 화~목 오후 7시30분, 금·토 4시30분, 7시30분. (02)3443-1010.
조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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