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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뉴스

한센병 환자들 40년만의 귀향

등록 2006-12-12 17:39

눈물범벅 떠나온 길, 가슴 깊이 묻고 산 고향…이제야 찾아가요

산청 성심원 환자들 27일 서울행

삼팔선이 가로막힌 것이 아닌데도 수십 년 동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부모형제와 고향 사람들에게 ‘문둥이’라며 날아온 돌멩이에 피 범벅, 눈물 범벅이 되어 고향을 떠나온 한센병 환자들이다.

경남 산청군 산청읍의 가톨릭 프란치스꼬회 성심원에서 살아가는 한센병자들이 오는 27일 고향을 떠난 지 40여년 만에 서울로 고향을 찾아간다.

이번 귀경 길에 나선 이들은 성심원에서 살아가는 200명의 환자들 가운데 고향이 수도권인 사람들이다. 반세기만에 찾는 고향길이지만 일정은 단 하루뿐이다. 수도권에서 성심원을 후원해온 자원봉사자들이 따뜻한 방과 식사를 제공하겠다고 나섰지만, 아직도 자신들의 환부를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한센인들은 당일치기를 고집했다.

귀향을 보름이나 앞두고 있는데도 임아무개(82) 할아버지는 요즘 잠을 이루지 못한다. 한센병에 걸린 아버지를 두어 어린 시절 마을과 학교에서 놀림과 따돌림을 받아 상처가 큰 두 딸은 그리워도 볼 수 없었다. 이제 결혼해 살고 있는 두 딸을 이번 귀경 길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성심원의 막내인 하아무개(60) 할아버지도 일년에 한두 번 겨우 전화통화만 했던 동생을 만날 생각에 잠을 설치고 있다.

이들에게 ‘가족’이란 심장을 가시로 찔리는 듯한 아픔일 뿐이었다. 한센병자임이 드러나면 전염될까 두려웠던 이웃들은 물론 가족들도 쫓아낸 뒤 한센인들을 죽은 사람으로 여겼기에 이들은 죽어서도 돌아갈 고향이 없었다. 가족 중에 한센병력자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혼담이 오가다가도 깨지기 일쑤여서 가족들은 이들의 존재 자체를 지우고 싶어 하기 마련이었다. 성심원에서도 한센환자들이 실제 죽어서도 갈 곳이 없기에 납골당까지 갖춰두고 있다.

그래도 두 할아버지는 다행인 경우다. 다른 병자들은 여전히 가족들과 선이 닿지 않아 이번에도 남산 타워에 올라가 멀리서 고향집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한을 달래야 한다.

성심원 임재순 팀장은 “한 어른이 ‘어린 시절 놀던 대구 팔공산 동화사에 가보고 싶다’고 한 말을 듣고서, 이 분들도 그 동안 가족과 고향을 입 밖에 꺼내지는 않지만,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살거나 놀던 곳에 가보고 싶다는 것을 알고, 지난 4월부터 10여 명씩 고향 여행을 시켜드렸다”고 말했다. 대부분 연로한 환자들에게 이번 귀경 길은 마지막 여행이 될 가능성이 높다. 올해 귀경 여행을 다녀온 90명 가운데 벌써 4명이 세상을 떴다.

이들이 접고 산 것은 가족과 고향만이 아니었다. ‘태어난 것이 저주스럽다’며 생일마저 기억하고 싶지 않던 이들을 위해 성심원 직원 60여명과 자원봉사자들은 내년엔 생일을 찾아줄 계획이다. 평생 가슴에 피멍이 든 한센인들이 주위의 사랑으로 고귀한 인간으로서의 존재감을 되찾고 있다. (055)973-6966. sungsim1.or.kr

글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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