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수도자에게 길을 묻다 ③ 가톨릭-최향선 프란치스카 수녀
내 맘에 안든다고 잘못됐다고 해선 안돼요. 어떤 아이는 코가 오뚝해서 예쁘고 어떤 아이는 코가 납작해서 예쁘잖아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신명나게 살아야지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오늘밖에 없는데…
서울 구로구 오류동 성공회대학 쪽에서 ‘예수수도회’란 푯말을 따라 들어가니, 서울 속의 별천지다. 소란한 담 밖과는 전혀 다른 고요와 평화가 흐른다. 한 수녀가 밭고랑을 오가며 일을 하고 있고, 넓은 정원 저편 야산의 성모 마리아 상 앞에선 한 수도자가 손을 모으고 있다. 최향선 프란치스카(69) 수녀다. 그가 사람을 만나면, 기도할 때의 그 다소곳한 모습은 찾아볼 길이 없다. 수녀가 된 지 50년이 다 되는 그지만 땅 밑을 내려다보면서 뚜벅뚜벅 걷는 모습에서 10대 소녀의 왈가닥 끼가 묻어난다. 하지만 그는 예수수도회의 군기반장이다. 지원기와 수련기를 거친 예수수도회 수녀치고, 그의 가르침을 받지 않은 수녀는 거의 없다. 군기반장이긴 하지만 그가 전파한 것은 ‘규율’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이곳에서 진정으로 나누고픈 ‘명랑한 웃음’이었다. 수도회 공동체를 행복하게 만들던 그는 2004년부터 천주교의 대표적인 영성수련인 ‘꾸르실료’ 수련을 지도하면서 이제 신자들에게 ‘긍정의 에너지’를 나눠주고 있다. 거침없이 말하고, 투명하게 웃는 노수녀의 에너지 속으로 들어가 보자.
-어려서부터 성격이 활달했나요? =여고 시절에 길을 가면서 돌멩이를 발로 툭툭 차고 다녔어요.
-그 시절엔 여자는 다소곳해야 한다고 교육받지 않았나요? =제 목소리가 워낙 크니, 할아버지가 ‘여자 목소리가 담을 넘어선 안 되는데’라고 걱정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목소리가 담을 안 넘어가는 집에서 살겠다’고요. 그래서 이렇게 큰 집에서 살고 있잖아요.
-그렇게 기고만장하게 자랐으니, 규율이 엄한 수도회 생활이 쉽지 않았겠는데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네가 수녀가 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고 했지요. 스물세 살에 수녀가 되겠다고 독일에 갔는데, 할머니가 보고 싶다고 징징대기도 하고, 꼭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며 회의도 했지요.
-그런데 어떻게 수녀가 되고, 한국 관구장까지 되셨어요? =하느님은 삐뚤이도 바로 서게 해주시데요. 내가 비틀어져 있어도 결국은 바로 해주셔요.
-수녀님이 그 성격을 지켜올 수 있었던 것은 이 수도회가 남다른 점이 있기 때문 아닌가요? =우리 수도회가 솔직하고, 명랑하고, 투명한 것을 좋아해요. 하느님이 이 길로 초대했으니,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행복해지는 것을 중요시하기 때문이지요.
-보통 사람은 자기 단점을 고침으로써 행복해지려고 하는데, 수녀님은 그 성격을 고치려고 노력하지 않았나요? =우리는 누구나 부모님으로부터 장단점을 물려받아요. 단점을 없애려고만 하면 장점조차도 살릴 수 없게 되지요. 장점을 살려나가면 단점은 잘 드러나지 않게 되지요.
-그런데 혼자 산다면 모를 일이지만 여럿이 함께 살다 보면 단점이 다른 이에게 상처가 되기도 하잖아요. =그러니 다른 점을 인정해버려야지요. 하느님은 우리 모두를 다르게 만드셨어요. 이렇게 다른 모습들이 각자의 생명력을 발현하게 한 것이지요. 그러니 내 마음에 안 든다고 잘못됐다고 해선 안 돼요. 나와 다르더라도 너의 생명력을 발휘하도록 도와주어야지요. 서로 다른 점을 포용할 때 각자가 자신의 꽃을 피우는 아름다운 정원이 되지요.
-우리가 오늘 가정과 회사와 모임에서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어볼 수 있을까요? =상대의 장점을 발견하고, 칭찬을 해보세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칭찬하는 데 너무 인색해요. 장점을 발견하다 보면 어떤 아이는 코가 오뚝해서 예쁘고, 어떤 아이는 코가 납작해서 예쁘잖아요. 자기가 상대를 칭찬하는 것은 행복의 지름길이지만, 자기에 대해 모든 사람이 칭찬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불행의 지름길이지요.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3분의 1이 있으면, 3분의 1은 무덤덤하고, 나머지는 자기를 싫어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게 현명하지요.
-여럿이 함께 지낼 때 뭘 주의해야 할까요? =아주 사소한 것도 상대의 사적인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 돼요. 그리고 상대가 무엇을 싫어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주의 깊게 살피고 세심히 배려해주는 게 필요하지요. 서로에게 배려하는 마음이 구원에 이르게 해요. 이렇게 배려와 연민의 마음을 이끌어내려고 하느님이 혼자서는 일어설 수도 없는 갓난아기로 오신 것이지요.
-수녀님 마음은 이팔청춘일 텐데 나이 들어 몸이 말을 안 듣고 아프면 슬퍼지지 않나요? =70년이나 이렇게 부려먹고 아무렇지도 않기를 바라는 게 도둑놈 심보지요. 하느님이 만든 것이니 70년이나 버텼지 기계 같으면 어림없지요.
-그게 바로 긍정적인 사고군요. =그럼요. 무엇 때문에 부정적으로 생각해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신명나게 살아야지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오늘밖에 없는데. 오늘 저녁에라도 하느님이 데려가시면 내일은 없잖아요.
글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사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최향선 수녀는 수도회 관구장 지낸 ‘웃음 맑은 군기반장’
최향선 수녀는 1985년부터 94년까지 수도회 한국 대표인 관구장으로서 초·중·고 학교와 유치원, 병원 등에서 봉사하는 200여명의 수도자들을 이끌었다. 그러나 그는 ‘관구장’이란 직책을 지낸 것을 함구했다. 직책 때문에 받는 존경과 사랑은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점이 그가 고위직을 거치면서도 자유와 평안을 구가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으려는 사람들에게 꼭 한마디 해준단다. “꿈 깨”라고.
그가 속한 예수수도회는 1609년 영국인 메리워드라는 여성에 의해 세워진 수도회다. 당시 여성의 활동이 극히 제약돼 여성수도회는 수도원 밖을 나설 수도 없는 봉쇄수도원이었는데, 메리워드는 여성 수도자가 세상 밖으로 나서는 최초의 활동수도회를 만들었다. 한국엔 1964년 ‘한국동정성모회’로 진출했으며, 2004년부터 ‘예수수도회’란 이름으로 바뀌었다.
최 수녀는 독일에서 이 수도회에 입회해 6년을 지낸 뒤 한국으로 돌아와 수도회 소속 학교에서 독일어와 종교 과목을 가르치기도 했으며, 주로 수도회 수녀들의 수련을 지도했다. 그는 밝은 성격과 달리 얼굴 사진을 정면에서 찍는 것은 사양했다. 아직도 젊은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면 곤란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조연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