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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뉴스

“싫다고 죽여서야 쓰나요…다 살려내야지”

등록 2007-01-16 18:57

여성 수도자에게 길을 묻다 ④ 원불교- 향타원 박은국 종사

취서산, 신불산, 천황산, 가지산, 운문산, 고헌산, 문복산 등 형제처럼 나란히 서 있는 영남 7대 명산 군락 속의 울산 울주 간월산 아래 하늘이 감춰둔 땅이 있다. 배냇골이다. 어머니 자궁 속처럼 깊고 깊은 이 화전민 터는 이 고을 사람들에게 ‘박기터’(박씨를 기다리는 터)로 불렸다. 20년 전 이곳에 찾아와 자리를 잡은 이가 바로 원불교 향타원 박은국(84) 종사다. 원불교 여자 교무들에게 신앙의 나침반이자 원불교 영남지역의 정신적 지주다.

예닐곱 채의 한옥과 양옥집들이 계곡 가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배내청소년훈련원에서 객을 맞는 향타원이야말로 진정한 배냇골이다. ‘환경 운동’이란 말도 제대로 배워보지 못한 노인이지만, 이곳의 바위 하나, 나무 한 그루를 다치지 않으려고 대각전 뒤 축대의 방향을 틀었을 만큼 이곳의 자연과 일체가 된 그다. 농사를 지으면서 농약 한 방울 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길가의 풀을 베거나 불을 놓을 때도 일체 생명은 해를 입지 않게 피하라고 전날 기도를 드리는 그다. 노구에도 새벽 3시에 일어나 한 치 어긋남 없이 살아가며 매일 기도 터에 올라가 간절히 기도하는 그는 새해를 맞아 원불교에 출가한 이후 60년간 올린 머리를 싹둑 잘라버렸다. ‘말’은 거두고, 오직 기도의 삶만을 살겠다는 뜻이었다. 진퇴양난의 기자를 위해 “음력 설이 안 됐으니, 아직 새해가 아니다”라는 주위 사람들의 말에 속아준 그의 자비심이 드디어 배냇골의 한 자락을 꺼내 속인에게 나눠준다.

하도 산 생명들이 죽어가니 그들을 위해 기도해요. 스스로 참회하면 세상이 달라져요. 자기 중심도 있어야지만 함께할 때 함께하는 도가 있어야지요

※몸도 불편한데 매일 언덕을 올라 다니면서 무슨 기도를 그렇게 합니까? =하도 산 생명들이 죽어나가니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요. 죽임당하지 말고, 죽이지 말라고요. 이번에 죽은 후세인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생명을 해친 사람들은 ‘지옥행’이겠지요? =그렇지요. 그런데 그들도 솟아날 구멍이 있어요. 정산 종사님(원불교 2대 종법사·최고지도자)이 하루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죽이려 한 조달(데바닷타)은 제도(구원)받기 어렵다는 법문을 했어요. 그러더니 다음날 말씀하기를 어젯밤에 조달이 꿈에 나타나 ‘나도 참회하면 제도받는다’고 하더라는 거예요. 그러니 참회가 살 길이지요.

※왜 참회하면 제도받지요? =참회하면 자기가 달라지기 때문이지요. 자기가 달라지면 근방이 달라지고, 근방이 달라지면 나라가 달라지고, 나라가 달라지면 세상이 달라져요. 그러니 자기가 참회함으로써 세상이 제도받을 길을 여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진정으로 참회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지요. =그러니 마음을 알고, 마음을 잘 쓰는 마음공부를 해야지요. 마음공부를 해 도심 정력(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힘)을 얻으면 얼음장도 녹일 수 있습니다. 대산 종사님(원불교 3대 종법사)께서는 지금이 ‘진급 시기’라고 했지요. 사시사철 중 봄 같은 시기라서 공부하기가 훨씬 수월하다는 것이지요.

※지금이 거꾸로 후퇴해 말세로 가는 게 아니고요? =사람들의 욕구가 너무 많아져 마음이 모질어지니 그렇게 보입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진급의 과정입니다.

※역사 이래 최초로 여성들이 전면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원불교에선 교단 초기 수위단(최고의결기구)을 남녀 동수로 두는 등 여성을 남성과 동등하게 대우했지요? =원불교에선 초기부터 남녀에게 동등한 권한을 주었지요. 또 가정에서도 재산 분배와 부모 모시는 것까지 아들딸 평등하게 하게 했어요. 이런 교단 분위기 때문에 여자들이 오히려 남자들을 이겨먹곤 했지요.

※이제 원불교만이 아니라 어디서나 여자들이 힘이 예전 같지 않지요. 그래서 여성들의 역할과 책임도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돈 없는 사람이 갑자기 돈이 많아지면 더욱더 위세를 부리게 마련입니다. 그러니 여성들도 마음공부를 해서 도(道)를 갖추어 진화를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안방 인심이 달라져야 세상 인심이 달라져요. 대종사님(원불교 교조·박중빈)은 “여자는 주밀(세밀)하지만 포용력이 부족하고, 남자는 포용력은 있지만 주밀하지 못하다”고 했지요. 우리 남녀가 서로 질타하기보다는 보완하면 함께 원만해집니다.

※요즘은 ‘자기 중심주의’ 시대지요. 제 목소리만 있지 하모니가 부족합니다. =자기 중심도 있어야지만, 능히 나아갈 때 나아가고, 물러설 때 물러서고, 함께할 때 함께하는 도가 있어야지요. 진리를 알아야 도가 나옵니다. 그래서 중화(中和)가 되어야지요. 대산 종사님은 공산당조차 멸공이나 승공이 아니라 화공(和共)하고 구공(求空)하라고 했어요. 내 싫다고 내치고 죽여서야 쓰나요. 다 살려내는 도를 써야지요. <끝>

울주/글·사진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향타원은열여덟살에 출가…원불교의 산증인

‘하늘같이 맑고도 높아라/땅같이 깊고도 넓어라/일월(해와 달)같이 밝고 빛나라/산같이 순수하고 힘차라.’

해발 500 고지에 있는 배내청소년훈련원(원장 장덕훈 교무)의 돌엔 향타원의 글이 새겨져 있다. 그가 청소년에게 바라는 이 글은 16살 소녀 때부터 막 태동한 원불교에 몸담아 닦아온 자신의 수행 과정이기도 하다.

원불교가 탄생한 전남 영광 백수읍 길룡리에서 가까운 법성포에서 살던 향타원은 길룡리에서 공부하다가 18살에 원불교 성직자인 교무로 출가했다. 교조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를 비롯하여 정산 송규-대산 김대거 등 초기 교단의 스승들을 모시고 공부한 원불교의 산증인이다.

원불교 서울교구장, 부산교구장을 거쳐 20년 전 인적 끊긴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당시 청년 교도들이 이 일대의 잡풀을 제거하려 불을 질렀다가 대형 산불이 났을 때 온갖 노력으로도 진화되지 않았다. 당시 향타원을 모시고 있던 김순익 교무는 “향타원께서 모든 대중을 대법당에 모이게 한 뒤 원불교 주문인 ‘일원상 서원문’을 외우던 중 기적처럼 불이 잡혔다”고 전했다. 향타원은 대각전을 짓고 보니 “젊어서부터 늘 꿈에서 보던 터였다”고 했다.

이곳은 ‘산부처’를 길러내는 도량이다.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여름캠프와 숲속의 학교 등은 실제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체험의 장으로 자리 잡았다.

조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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