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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뉴스

“금욕 지킨다고 수행 잘하는 것 아니더라”

등록 2007-08-06 18:58

‘만해상’ 받는 한국불교 전문가 루이스 랭커스터 교수

세계적인 불교학자 루이스 랭커스터(75) 버클리캘리포니아대 명예교수를 만났다. 지난 2일 그가 참여한 ‘금욕과 깨달음’ 국제학술회의가 열린 서울 안암동 고려대에서였다.

그는 미국에서 ‘한국 불교’의 대부다. 오는 12일 강원도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열릴 만해축전에서 만해상(포교부문)을 받는 것도 그가 한국 불교를 세계에 알린 공로 덕분이다. 1970년까지만 해도 버클리대 도서관에 한국 불교에 관한 책은 일본 관리와 미국인 기독교선교사가 쓴 책 세 권만이 비치돼 있었다. 미국 학자들도 한국 불교는 중국 불교의 아류 정도라고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 한국을 방문한 랭커스터 교수가 독특한 생명력을 지닌 한국 불교를 발견하면서 미국에서 한국 불교가 전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한국 불교를 공부하면서 해인사 팔만대장경의 영문목록을 작성해 서구에 알렸다. 또 미국종교학회에 한국종교분과위원회를 설립하는 데 기여했고, 지난 2000년 버클리대를 은퇴한 뒤 2004년부터 로스앤젤레스 불교대학인 서래대학 총장으로 있으면서 한국 불교 자료의 디지털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뉴욕주립대 박성배 교수와 고려대 조성택 교수 등 미국에서 공부한 한국 불교학자의 상당수가 그의 제자다.

그는 이날 ‘금욕과 깨달음’ 학술회의에 첫 강연자로 등장했다. 중앙승가대 총장 종범 스님이 기조 연설에서 지장율사와 서산대사, 보조국사 등의 고승들이 강조한 금욕의 중요성을 목청 높여 상기시킨 다음이었다. 그러나 랭커스터 교수는 경전과 네팔·일본·한국 등의 사례를 들어 금욕과 깨달음은 상관관계가 없다는 쪽에 무게를 실었다. 강연 직후 인터뷰를 했다.

‘금욕과 깨달음’ 학술대회 발표“불교는 다양한 수행자 포용”한국 불교 세계에 알린 공로“만해 존경했는데 상받아 기뻐”

※‘성적인 쾌락’을 즐기는 게 깨달음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재미’도 보고 깨달음도 얻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보다 희망적인 소식이 있겠는가?

=너무 좋아하지 마라. 나는 학자로서 여러 가지 사례만 보여줬을 뿐이다. 결론이나 판단을 내리는 것은 내 일이 아니다. 나는 다만 정보를 제공해줄 뿐이다.

※석가모니는 출가 전 수많은 여자들과 성적인 쾌락을 누렸다. 한국의 고승들 가운데도 효봉, 성철, 청담 선사 등은 결혼한 뒤 자식까지 낳았고 출가한 뒤엔 청정하게 수행에 전념했다. 이를 보면 ‘금욕’ 계율로 인해 출가자들이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 더욱 동경하고 환상을 품게 하는 것은 아닌가?

=스님들이 결혼을 해 가족을 갖게 된다면 거기에 마음을 뺏기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승가를 유지하기가 힘들어질 것이다. 불경에서 보면 가정을 가지고 있으면서 수행하는 사람들 얘기가 나온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도 전생에 출가자였을 수 있다. 그런 재가자들도 수행의 어떤 시점에는 누구로부터도 방해받지 않고, 수행해야 하는 시점이 있는 것 같다. 출가자도 방해받지 않고 수행에만 집중하는 게 필요하다. 네팔 다와리 승단도 출가승에 대해 규제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정한 시기가 되면 외부의 간섭 없이 수행에만 전념하는 시기를 둔다.

※부처님은 ‘성기가 두 개만 있어도 수행할 사람이 한 명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금욕 계율을 둔 것은 승가 제도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감각적 쾌락에 너무도 나약한 인간의 습성을 간파한 때문이 아니겠는가?

=한때는 나약하지만 한때는 나약하지 않을 수 있다. 한때 성적으로 타락했던 사람도 다른 시점엔 금욕적인 수행을 할 수도 있고, 한때 금욕을 하던 사람도 어떤 시점엔 타락할 수도 있다. 불교 전체에선 이런 수행자도 저런 수행자도 있다. 불교는 이런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들을 다 포용한다.

※깨달음을 성취하는 데 금욕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불교엔 상반되고 다양한 사례들이 있다. 불교에선 상반된 대답이 동시에 가능하다.

※남방불교와 티베트불교 스님들이 모범생처럼 규격화돼 있다면, 한국의 스님들은 철저히 계율을 지키는 스님에서부터 비교적 계율로부터 자유로운 스님들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고, 자유자재하면서도 수행에 투혼을 불사르는 독특한 면이 있다. 교수님이 받은 느낌은 어떤가?

=한국엔 영적으로 뛰어난 스님들이 많다. 계율을 안 지키는 스님들도 있고, 계율을 철저히 지키는 스님들도 있다. 그런데 계율을 안 지키는 스님들이 반드시 수행을 못하는 것도 아니고, 계율을 철저히 지키는 스님들이 반드시 수행을 잘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한국의 스님 중에서 교수님의 가슴에 남아있는 분이 있는가?

=수백 명의 스님을 만났다. 어떤 한 분을 말씀하긴 그렇다. 많은 스님들이 내겐 특별했다. 그리고 그분들이 성취한 것을 높이 산다. 그러나 그 성취에 대해 내가 판단을 내리기는 어렵다. 나 자신이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 불교의 특성을 뭐라고 보는가?

=‘한국 불교’를 ‘불교’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물론 불교 안에 인도, 중국, 일본 등 다양한 불교가 있다. 한국 불교의 특성이 있지만 전체적 관점에서 봐야 한다. 원효도 한국의 불교사상가라고 하지만, 원효가 지향했던 것은 한국적인 것이 아니라 불교적인 것이었다. 그게 보편성을 추구하는 불교의 장점이다.

※만해는 스님도 결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불교가 핍박받던 일제 시대에 불교가 어떻게 해야 살아남고, 주변부에 머물던 불교가 어떻게 사회에 기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던 근대적 인물이었다.

※만해상을 받는 소감은?

=만해 스님을 존경했는데 이 상을 받게 돼 굉장히 기쁘다. 영예로운 상이다. 그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글·사진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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