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온 ‘꿈 탐험가’ 제레미 테일러 박사
우리나라 사람의 삶은 꿈으로부터 시작된다. 태몽이다. 사는 중에도 꿈을 통해 길흉을 미리 점쳐보곤 한다. 또 중국의 장자는 자신이 나비가 되는 꿈을 꾸고 깨어나선 ‘내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인가, 나비가 꿈에 내가 된 것인가’라며 현실과 꿈의 괴리를 무너뜨렸다. 티베트 불교는 꿈을 의식해 꿈의 내용을 의도적으로 바꾸며 진리를 깨달을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 한국의 선가에서도 깨어있을 때나 잠잘 때가 화두가 똑같이 들리는 몽중일여(夢中一如)의 경지를 중시한다. 특히 (번뇌에 물든 상태에서) 눈으로 보이는 것, 귀로 들리는 것조차 ‘꿈일 뿐’이라며 일체의 미망에서 깨어나라고 독려하기도 한다.
이런 꿈 수행 전통을 현대인들의 심리적 치유와 영적 진보를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꿈과 무의식이야말로 현실보다 더 우리 자신을 분명히 드러내 준다고 주장하는 ‘꿈 작업’ 전문가가 내한했다. 미국의 개신교 목사이고 신학자이면서 세계적인 ‘꿈 탐험가’인 제레미 테일러(64·사진) 박사다. 인천시 서구 가정동 가톨릭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기도의집에서 23~27일 4박5일 동안 40여명을 대상으로 ‘꿈작업’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던 그를 24일 만났다.
‘자신’의 문제 발견하도록 암시심리치유·영적 진보 가능하게 해개인편견 수용하면 집단편견 극복
▷ ‘현실조차 꿈’일 뿐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꿈 애기는 잠꼬대로 비춰질 수 있는데, 당신은 꿈이 현실만큼 중요하며, 오히려 꿈이 현실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왜 그런가?
▶ 내 삶에서 중요했던 순간들을 되돌아보면, 엄청난 창조의 원천은 무의식에 있었다. 또 내 경험으로는 꿈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 ‘마술 거울’이다. 꿈을 우리가 잘못 해석할 수는 있다. 그러나 내가 만일 잘못 해석하더라도 꿈은 고집이 세서 오역한 사람이 이를 교정할 때까지 다른 형태로 계속 나타난다. 따라서 영구적으로 잘못 갈 수 없도록 이끈다.
▷ ‘꿈 작업’을 해서 무슨 이익이 있는가?
▶ 헷갈리는 감정들을 분별할 수 있고, (꿈에서) 영감을 얻어 창조적 행위를 할 수 있다. 종교적으로는 훨씬 더 깊이 신성을 경험할 수 있다.
▷ ‘꿈 작업’을 통해 내적인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가?
▶ 꿈은 육체적 건강이나 병을 표현해주곤 한다. 꿈 작업을 통해 자신의 육체적 문제를 발견할 수도 있다. 꿈이 보여주는 것은 육체적인 것만이 아니다. 꿈은 성적·감정적·영적으로 삶의 심오한 의미들을 표현하고 있다.
▷ 개인의 무의식을 바꾸는 것과 사회를 변혁시키는 것, 둘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시급한 일인가?
▶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질문이다. 모든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고, 모든 정치적인 것은 개인적인 것이다. 개인이 갖고 있는 편견이 집단의 억압이나 편견의 연료 구실을 한다. 어떤 사람이 자기 내면의 인간성을 억압하면 상대의 인간성도 억압하게 된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을 부정하는 면이 내 안의 억압된 부분과 일치한다. 그래서 집단이 갖고 있는 편견은 개개인이 자기 안의 무의식적 편견을 수용한다면 극복될 수 있다.
▷ 꿈은 다양하게 표현된다. 그것이 의미하는 상징을 어떻게 분별해낼 수 있단 말인가.
▶ 꿈이 갖고 있는 상징적인 언어는 우주 보편적이다. 언어나 민족, 문화의 차이에 따라 각자의 상징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상징들은 근본적으로 원형적인 상징 위에 만들어진 것이다.
▷ 꿈작업은 누구의 영향을 받은 것인가.
▶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은 사람은 융이다. 융은 미지의 땅을 탐험한 탐험가다. 융이 탐험 뒤 돌아와서 지도를 제시했는데 그의 지도는 거의 틀림이 없다. 또 티베트 불교도들에 의해서도 큰 영향을 받았다. 내 동료들의 상당수는 티베트의 꿈 전통을 실질적 기반이 없는 상징으로 치부한다. 그러나 정말로 티베트의 수행 방식으로 수행을 해보면 환타지가 아닌 것을 경험한다.
▷ 특별히 한국인들이 많이 안고 있는 상처나 고통은 무엇인가.
▶ 한국에선 꿈작업 참여자들의 대부분이 여성이다. 이들은 여자로 태어난 좌절감이 뿌리 박혀 있었다.
▷ 꿈을 통해 영적 진보를 이룰 수 있는가.
▶ 꿈은 육체적 죽음이 궁극적 죽음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준다. 이성적 세계관의 가르침과는 상관 없이. 티베트 불교에선 잠 잘 때의 현상과 죽었을 때 현상이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매일 밤 꾸는 꿈은 육체적 죽음에 대한 준비 과정이다. 우리는 매일 밤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다. 우리가 ‘삶이 무엇인가’라고 질문할 때 현실보다 꿈이 더 만족할만한 답을 얻게 해준다.
▷ 우리가 오늘 밤 어떤 꿈을 꾸었을 때 이를 삶에서 활용하는 것이 가능한가?
▶ 모든 꿈은 항상 꿈 꾼 사람의 심리적, 영성적 건강을 도와주기 위해 꾼다. 심지어 악몽까지도. 내가 어떤 꿈을 기억했다는 사실 자체는 꿈이 제시하는 문제점들을 내가 창조적이고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능력을 지녔음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나는 수십 년간 꿈작업을 하면서 어떤 꿈도 ‘네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라고 하는 꿈을 본 적이 없다. 최악의 악몽일지라도 꿈은 그대가 꿈에서 힌트를 얻어 뭔가를 한다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도와주기 위한 것이다.
인천/글·사진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꿈 작업’이란
꿈해석 시도해 메시지 얻어
참여자들의 이름이 담긴 바구니에서 자신의 이름이 적힌 쪽지가 뽑힌 참여자가 기억나는 꿈 하나를 얘기한다. 그러면 다른 참여자들이 그 꿈에 대해 더 상세한 묘사를 요구하기도 하고, 꿈 꾼 사람에 대해 궁금한 점을 묻는다.
어떤 참여자는 그 꿈이 자신의 꿈이라면 그 꿈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인지 해석한다. 그런 대화 도중 꿈 꾼 당사자나 제 3자들은 불현듯 꿈이 자신에게 주는 의미를 깨닫게 된다. 집단적으로 꿈을 해석하면서 현실과 무의식의 세계를 나누는 과정에서 참여자들 속에 깊이 잠자고 있던 무의식이 기지개를 펴면서, 꼬여있던 삶의 실타래가 풀리기도 한다.
‘꿈 작업’은 혼자서도 할 수 있다. 자신이 꾼 꿈을 그림으로 그려보거나 몸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상상을 통해 꿈으로 다시 들어가 본다. 또 가장 마음이 가는 이미지나 상황을 현실에서 표현해 보기도 한다. 자기 꿈을 이런 식으로 탐색하는 도중에 우리는 “아하!”하며, 꿈이 자신에게 제시해주는 진정한 메시지를 깨달을 수 있게 된다.
관련 책으로 〈사람이 날아다니고 물이 거꾸로 흐르는 곳〉(동연 펴냄, 제레미 테일러 지음, 이정규 옮김), 〈선녀는 왜 나무꾼을 떠났을까〉(한겨레출판 펴냄, 고혜경 지음)와 로버트 에이 존슨이 짓고, 고혜경씨가 옮긴 〈신화로 읽는 여성성, She〉,〈신화로 읽는 남성성, He〉, 〈신화로 읽는 낭만적 사랑, We〉(동연 펴냄) 등이 있다.
조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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