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적 교전 지역에서 발생한 유례 없는 대규모 인질 사태로, 워낙 특수한 사례였다. 정부로서는 딜레마의 연속이었다. 일반적인 국제적 관례를 잣대로 공과를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부 당국자는 29일 탈레반과 집접 대면협상으로 인질 전원 석방이란 합의를 이끌어내고도 평가를 유보하며 이렇게 말했다. ‘딜레마의 연속’이라는 표현처럼, 이번 사태는 ‘세계화 시대 한국 사회의 성장통’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근본적 고민을 던졌다. 물론 희생자가 둘이나 있었지만, 정부가 악조건 속에서 사태를 잘 수습했다는 여론도 높다.
■파병정책 전면 재검토■공격적 선교행태 반성■이슬람권 외교력 강화
무분별 파병정책 성찰=탈레반 쪽은 지난달 19일 한국인 23명을 납치한 직후부터 ‘한국군 철군’을 요구했고, 결국 석방 합의에 이를 못박았다. 정부는 아프간 주둔 다산·동의부대가 24만명의 아프간 민간인을 치료하는 인도적 활동을 한다고 강조했지만, 탈레반한테는 ‘점령군인 미군을 돕는 외국군대’일 뿐이었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는 이날 논평을 내어 “군대 파견이 아니고도 국제평화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방안은 얼마든지 있다”며 “정부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아프간뿐만 아니라 이라크 파병부대를 즉각 철군시키고 나아가 분쟁 확산에 공조하는 국외 파병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동만 상지대 교수도 “석방 합의 조건에 한국군의 연내 철군이 명시된 게 중요하다”며 “앞으로 이라크 (파병) 문제에 대한 일정한 재검토가 불가피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기독교의 선교 행태 반성=<타임> 등 외국 언론은 한국 개신교계의 공격적 선교 행태를 비판하며, 이번 사태를 일종의 ‘종교 갈등’에 비유했다. 세계적 동영상 사이트인 ‘유투브’에도 한국 개신교인들의 아프간 내 선교 활동 동영상이 올라 비판의 표적이 됐다. 정부는 마침내 지난 1일엔 새 여권법에 따라 아프간을 여행 금지국으로 지정하는 법적 강제를 동원했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한해 1300만여명이 국외로 나가는 이 시대에 정부가 외교력과 법적 강제력으로 국민의 안전을 담보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부적절하다”며 “근본적으론 한국 시민사회의 자율 능력으로 안전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개신교계에서도 반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KNCC) 총무 권오성 목사는 “이번 사태가 선교의 틀을 바꾸고 선교 원칙을 새로 세우는 계기가 돼야 한다”며 “대토론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중동 등 지역정책 전환의 계기=이번 사태는 한국의 대중동, 이슬람권 외교 방향에도 교훈을 안겼다. 정부는 인질 2명 살해 뒤 국제사회의 비판적 시선을 무릅쓰고 탈레반 쪽과 직접 대면협상에 나섰다. 사우디·파키스탄·인도네시아 등 이슬람권의 협조를 얻는 데 힘을 쏟았다. 평화운동가인 이대훈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소장은 “탈레반 쪽과의 직접 협상은 외교 관례상 정부가 선택하기 어려운 방법이었지만 적극적 협상으로 국민의 생명을 구하는 노력을 기울인 점은 적극 평가할 만하다”며 “이는 미국 추종 일변도였던 한국의 대중동 정책에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는 중요한 외교적 선례로 기억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동 전문가인 유달승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이슬람 사회도 지역별로 다른 만큼 제3세계 특수 지역 전문가의 양성과 적절한 활용을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제훈 조연현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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