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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뉴스

‘비단꽃 굿판’ 삶과 죽음 함께 ‘덩더꿍’

등록 2007-10-16 04:55

[현장] 인간문화재 김금화 선생 5박6일 만수대탁굿

지난 13일 인천시 강화도. 강화읍에서 북서쪽으로 10여㎞를 달리니 산기슭에 금화당이 나온다. 금화당(錦花堂)은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무당, 즉 나라 만신으로 불리는 김금화 선생(76)의 이름을 딴 당집이다. 최근 나온 그의 자서전 <비단꽃 넘세>(생각의나무 펴냄)도 그의 두 이름을 합해놓은 것이다. 비단꽃은 금화의 순우리말이고, 넘세는 딸만 낳은 부모들이 다음엔 아들을 낳게 ‘남동생이 어깨 너머에서 넘어다보고 있다’는 뜻으로 지어준 이름이다.

당집 무대에서 닷새간의 일정으로 만수대탁굿이 펼쳐지고 있다. 만수대탁(萬壽大宅)굿은 황해도 지역에서 노인들의 만수무강과 돌아가신 뒤 극락 천도를 기원하는 굿이다. 큰 무당들도 평생 세 번을 하기 어려운 큰 굿판이다. <비단꽃 넘세>의 서문을 쓴 도올 김용옥 (세명대 석좌)교수가 1987년 서울 우이동에서 금화가 베푸는 굿판에서 너무도 강렬한 느낌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는 바로 그 굿이다.

작두 타고 ‘덩더쿵’ 당대의 ‘큰 무당’ 김금화

굿판에선 금화를 신어머니로 삼아 신내림을 받은 신딸들이 신어머니 금화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 ‘넘세’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천덕꾸러기로 태어나 굶기를 밥 먹듯 하고, 열두 살 때부터 무병을 앓고, 열네살부터 구박과 구타로 이어진 시집살이를 2년 만에 탈출한 어린 새색시의 아픔이 쏟아진다. 어디 그뿐이랴. 열일곱 살에 외할머니에게 내림굿을 받고 무당이 되었지만, 일제와 6·25, 새마을운동으로 이어지면서 굿은 미신으로 치부돼 때론 경찰서에 끌려가고, 때론 총구의 협박을 받으면서 살아온 그 모진 삶 속에서도 고통 받는 이들의 상처를 끌어안아 원한과 상처를 훨훨 털게 한 그의 삶이 바로 한 판 굿이었다.

열두살에 무병 앓은 ‘강신무’ 복 나누고 한 푸는 치유 기원하며 소 끼운 심지창 땅에 세우자 절정 천여명 관중 하나 되어 춤 덩실

“복은 나누고 한은 풀자”

그것이 그의 입을 통해 나온 신의 소리였다. 세상의 많은 곳에서 종교의 이름으로 복수와 테러와 살인이 자행되지만 굿에서 복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굿판에서 신은 늘 용서하고 위로하게 했다. 자신이 입은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힘으로써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굿판에서 오부지게 한판 놀면서 그 깊은 한을 녹여냈다.

마침내 금화가 무대에 등장했다. 그 앞에는 굿판에 쓰려고 잡은 소 한 마리와 돼지 두 마리를 앞에 두고 곰실곰실 굼뜨게 시작한 그의 몸짓이 어깨춤으로 이어지고, 온몸으로 펼쳐나간다. 잠시 뒤 치우천황옷을 포개 입은 그는 “마니산의 복이 동서남북으로 뻗어나가 백의민족 모두에게 내려주십시오”라고 기원한다. 마침내 이날 굿의 백미가 시작된다. 삼지창에 소고기 한 마리를 모두 꽂은 일자 막대기를 평지에 세우는 것이다. 소 한 마리의 무게가 무게이니만큼 장정 대여섯 명이 달려들어도 삼지창이 무게 중심을 유지하지 못한다. 굿판을 후원하던 한 할머니는 흥미진진하게 이를 지켜보는 1천여 명의 관객들에게 손으로 빌며 함께 치성을 드리라고 독려한다. 금화의 신아들과 신딸들이 달려들어 기우는 쪽의 막대 밑에 소금을 밀어 넣으면서 무게중심을 잡으려하지만 삼지창은 소 한 마리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기어코 쓰러지고 만다. 그러자 그 할머니가 거품을 물고 무대에서 쓰러져버린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려오고 사람들이 달려들어 할머니의 온몸을 주무른다. 그 사이 다시 삼지창이 세워지고 막바지에 금화를 뺀 모든 사람들이 삼지창에서 손을 뗀다. 이제 모든 것은 그 한 사람의 신기에 달렸다. 그가 치성을 드리고 마침내 손을 놓는다. 장정 대여섯 명이 사방에서 붙들어도 쓰러질 듯 흔들거리던 그 무거운 삼지창이 막대 하나에 의존해 서게 됐다. 이번엔 그가 삼지창에 꾀어있는 고기를 향해 칼을 던져 꽂아도 막대는 움직이지 않는다. 다시 그가 다른 막대기를 주워들고 삼지창에 꽂힌 고기를 내려쳐도 막대는 요지부동이다. 굿판에선 강림한 신이 삼지창을 붙들고 있다고 믿는다. 이 광경에 1천여 명의 관객들이 탄성과 함께 손뼉을 친다.

신과 인간, 삶과 죽음의 경계가 어디던가 조금 전 쓰러졌던 할머니도 벌떡 일어나 춤을 추며 산 자의 환희를 만끽한다. 마침내 금화의 신기가 발동했다. 노구의 몸이라곤 믿을 수 없이 유연하게 뛰어오르면서 관객의 신기를 끌어낸다. 그와 마주치는 관객들도 그와 함께 덩더꿍 덩더꿍 춤을 춘다. 신들과 죽은 자를 동원해 결국 산 자를 행복하게 하려는 산 자들의 춤판엔 너와 내가 따로 없고, 한국인과 외국인도 다름이 없었다. 삶의 회한도 미움도 무아지경의 춤 속에서 녹아내리고 있었다.

강화도/글·사진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영상 <영상미디어팀> 박종찬 기자 pj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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