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 성감별 금지 ‘헌법 불합치’ 보건복지부, 관련법 개정 계획
태아의 성별을 임산부나 가족에 알려주는 행위를 금지하는 의료법 조항에 대해 헌법 불합치 판결이 내려지자 31일 의료계는 대체로 환영의 뜻을 나타냈으나 종교·생명윤리학계에선 우려의 반응도 나왔다. 한쪽에선 성 감별 금지가 현실에서 이미 사실상 사문화했기에 큰 문제가 없다고 보는 반면, 다른 쪽에선 자칫 낙태나 성비 불균형 등 문제가 커지지 않을까 우려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어 “의료계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환영한다”며 “남아 선호 사상이 상당히 불식됐고 임신 주수가 일정 정도 지나면 임산부에게 태아의 성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목적과 기간의 제한없이 태아 성 감별 및 고지행위 금지는 부당하다”고 밝혔다.
심상덕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학술이사는 “인공 임신중절 계획이 없다면서 출산용품을 미리 준비하기 위해 태아의 성별을 알려달라는 산모들이 많고 의사들도 알려주는 경우가 많다”며 “임신 일곱 달이 넘으면 사실상 임신중절이 불가능하므로 산모의 알 권리 차원에서 이를 알려줘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대부분 나라들이 인공 임신중절을 금지하고 있지만 태아의 성별을 알려주는 것을 금지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반면, 헌재의 판결에 대해 종교계와 생명윤리학계는 우려를 나타냈다.
박정우 신부(서울대교구 생명윤리위원회 사무국장)는 “이번 헌재 결정으로 앞으로 낙태를 주장하는 이들이 늘어날 것 같다”며 “개정 입법과정에서 사실상 낙태를 할 수 없는 시점 등에 대한 규정을 명확히 하는 등 보완조처를 확실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생명윤리학자들은 또한 남아 선호 사상이 아직 남아 있는 우리 사회에서 자칫 과거와 같은 성비 불균형 등 문제가 다시 나타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구인회 가톨릭대 생명대학원 교수는 “생명 보호가 알 권리나 직업의 자유보다 더 귀중한 가치인 만큼 적어도 원하는 성별이 아니라 해서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가 있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관련 법의 담당부처인 보건복지가족부는 앞으로 여러 의견을 검토한 뒤 헌법 불합치 결정에 대해 최소한 임신 말기엔 태아의 성을 알려줄 수 있도록 관련 법을 개정한다는 입장이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조현 기자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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