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불교도대회 이후
27개 종단 수장 · 불자들 ‘편향’ 한목소리 규탄
정부 “종교 갈등 번질라”우려…다각접촉 나설듯
이명박 정부 들어 누적돼온 불교계의 불만이 결국 폭발했다. 27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헌법파괴·종교차별 이명박 정부 규탄 범불교도대회’는 그동안 현실 개입에 소극적이었던 불교계가 거리로 뛰쳐나왔다는 점에서 한국 현대불교사에서 일대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이날 대회에선 조계종 총무원장인 지관 스님을 비롯한 27개 불교종단 수장들은 물론 집회와는 거리가 먼 노승들까지 나서서 종교편향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는 유례없는 광경이 연출됐다.
애초 불교계는 이번 대회를 차분하게 치를 예정이었다. 촛불시위자들과 섞이지 않게 공휴일이 아닌 평일을, 그것도 낮시간을 선택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현장] 8·27 범불교도대회 <한겨레> 생방송 주요장면
그러나 정부가 발표한 종교편향 방지 대책이 불교계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면서 불심을 오히려 더 자극하는 역효과를 내고 말았다. 대회봉행위원장 원학 스님은 봉행사에서 “한민족 정신과 문화의 찬연한 불꽃을 피워왔던 불교가 기독교공화국을 꿈꾸는 일부 몰지각한 광신자들에 의해 이처럼 길거리로 내몰리게된 것”이라고 포문을 열었다. 참가자들은 발원문에서 “교회는 보되 법당과 성당과 교당은 보지 못하는 오만과 독선에 가득 찬 위정자들을 오늘 이 땅의 지도자로 만든 저희들의 공업을 머리 숙여 참회한다”며 불자들의 배신감을 토로했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새정부 초기의 개신교 편중 인사와 고위공직자들의 잇단 종교편향 발언 등으로 성난 불심을 달래기 위해 그동안 다각적인 접촉을 벌였으나 불교계의 불신을 해소하는 데는 실패했다. 불교계가 지목한 불신의 진원지는 이명박 대통령이지만, 대통령이 직접 이 문제에 대해 팔을 겉어부치고 나서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대회사를 한 수경 스님은 “촛불정국 때 두 번이나 국민 앞에 사과하고도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돌변한 이명박 대통령이 (불교계에) 사과를 하고, 어청수 경찰청장이 물러난다한들 대통령이 근본적으로 국정 운영 철학을 바꾸지않는 한 무엇이 달라지겠느냐”면서 “불자들이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위해 지리산에서 계룡산을 거쳐 묘향산까지 오체투지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수경 스님은 문규현 신부와 함께 다음달 4일부터 오체투지를 계획하고 있다.
정부로선 매우 곤혹스런 상황을 자초하고 만 셈이다. 그러나 불교계의 갈등이 장기화할 경우 자칫 종교간 갈등으로 번질 수도 있고, 그럴 경우 국가적 분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정부는 앞으로도 불교계의 마음을 얻기 위한 접촉을 계속할 예정이다. 불교계의 표적이 되고 있는 어청수 경찰청장의 조계종 방문 등 여러 행보가 예상된다. 불교계로서도 이날 대회를 통해 불교계의 목소리를 강도높게 전달하고 세를 과시한 만큼 종교차별 금지 입법 등 정부의 조처가 가시화할 경우 강경 입장만 고수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불교계는 일단 추석 때까지는 정부의 추가 조처를 지켜본 뒤, 그 이후에 또다른 실력행사에 나설지를 결정할 계획이다. 따라서 앞으로 보름여 동안은 냉각기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 기간 동안 어느 지점에서 서로의 접점을 찾을 수 있는지를 두고 양쪽 사이에 다양한 모색작업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불교계는 정부의 추가 조처가 미흡할 경우 불자들이 많은 대구와 부산, 경남 등의 지역에서부터 다시 집회를 열어 대정부 압박의 강도를 높인다는 배수진을 치고 있다. 타종교나 시민단체 등과의 연대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갈등 해소의 열쇠는 청와대가 쥐고 있다는 게 불교계 지도부 관계자들의 진단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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