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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뉴스

“한국은 다종교사회…기독교국가 만들려해선 안돼”

등록 2008-08-28 21:02

진보적 복음교단의 최근 대교단 추종 행태 비판

예수 ‘신성’ 강조한 사도신경 겨냥했다 징계회부

“유·불교와 소통 필요한데 교단은 논쟁 허용안해”

단식농성 김홍술 애빈교회 목사

개신교 장로인 이명박 대통령의 종교 편향을 규탄하는 범불교도대회가 서울광장에서 열리고 있던 27일 낮 서울 종로구 연지동 기독교회관 건물 앞에서 한 목사가 자리를 펴고 앉아 농성 중이었다. 부산 수정시장에서 낮엔 수백명의 노숙자들에게 밥을 나눠주고 밤엔 노숙자 10여명과 한집에서 공동체로 살아가는 애빈교회 김홍술(53) 목사다.

그는 나흘째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은 채 일주일 기한으로 단식 농성 중이다. 한낮의 뙤약볕이 그의 곁으로 다가온다. 그의 입술은 마른 논바닥처럼 메말라가고 있다. 건물 벽엔 그가 쓴 대자보가 붙어 있다. 대자보 제목은 ‘한국교회에 고함’이다. 1. 너 한국교회여, 너의 가진 것을 나누어 줘라. 2. 교리의 옷을, 교권의 관을 벗어 던져라. 3. 오직 예수의 삶으로 살라. 세 가지 요구가 담긴 대자보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 모습이 그려져 있다. 교권에 도전하며 스스로를 사지로 몬 김 목사의 모습이 그 십자가에 투영된다.

그는 기독교대한복음교단 소속이다. 이 교단은 미국식 근본주의적 신앙과 신학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풍토에서 벗어나 조선 사람 스스로의 교회를 만들어 한국적 기독교 혁명을 일으켜보자는 기치로 1935년 최태용 목사 등에 의해 탄생되었다. 소속 교회 수는 50여개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교단이 선교와 성장을 최대 목표로 달려온 것과 달리 군부독재 타도와 민주화, 통일, 인권운동에 앞장서왔다. 조용술, 오충일 목사 등이 이 교단 소속이다. 그래서 김 목사가 농성 중인 이 건물에 있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의 주요 교단 중 하나다. 그래서 복음교단은 한국개신교에서 그 어떤 교단보다 ‘작지만 큰 교단’으로 평가받았다. 미국산이 아닌 국산으로, 교권주의나 성장주의에 매몰되지 않은 찾아보기 어려운 교단인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근 소속 교회의 다툼과 교권으로 정죄하는가 하면, ‘소(小)하나 순(純·순수)하라’는 교단의 오랜 기치를 버리고 성장몰이에 나서며 대교단 따라잡기로 돌아서고 있다며 그가 교권에 도전하고 나섰다. 그것도 근본주의 신학의 핵심인 사도신경을 향해서였다. 사도신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라는 신앙고백으로 예수의 신성을 강조한 성서다. 예수의 신성보다 ‘위대한 인성’을 중요시하는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스승으로 따르지만 세상의 다양한 가르침을 배타하지 않고 존중하는 다원주의적인 유영모-함석헌 선생의 뜻과 맥이 닿아 있다. 그러자 복음교단은 교단 설립 역사상 처음으로 징계위원회를 만들어 그를 정죄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김 목사는 “교회의 사도성과 역사적 전승은 존중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것을 무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우리 안에서 보존되어온 유교와 불교 등 다양한 종교와 가치와 이념에 대해서도 대화해야 한다”고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의 ‘장로 정치’에 대해서도 “노무현 대통령의 코드인사를 비판해놓고 유유상종의 같은 종교인들만으로 더 지독한 코드정치를 해서야 되느냐”며 “다종교 사회인 우리나라 같은 곳을 기독교 국가로 만들려는 것은 미국식의 전형적인 제국주의적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개신교인 가운데도 자신의 뜻에 공감하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워낙 대화와 논쟁을 허용치 않는 교권주의적 풍토에 벌벌 떨기만 할 뿐 의사를 피력하는 분이 거의 없어 안타깝기만 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미국식 팽창주의와 성장과 성공을 하나님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맞는 조화와 균형과 아름다움을 갖춘 교회를 열망해온 꿈이 갈수록 현실에서 멀어져간다는 것이다.

그는 일찍부터 교리와 관념 속의 신앙이 아니라 삶과 현실 속의 신앙을 추구했다. 젊은 시절엔 고난주일이면 늘 단식을 했지만, 98년부터는 고난주일에도 일주일간 거리로 나가 노숙인들과 함께 길에서 밤을 보낸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를 깨우고 그를 예수의 삶으로 다가가게 한 것은 교리나 교권이 아니라 그런 현장이었다.

개신교인들이 수없이 지나다니는 이 거리도 그에게 적나라한 한국 교회의 현재를 보여주는 ‘현장’이다. 며칠 전엔 한 60대 노인이 대자보를 보더니 무작정 뜯어내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한국 교회를 왜 욕되게 하느냐”며 욕설을 했다. 다음엔 ‘멜기세덱’이라고 쓰인 모자를 쓴 남자가 다가와 “네가 예수를 아느냐”고 고함을 쳤다. 그러자 지나던 한 목사가 그에게 “너 이단이지! 이단이지!” 하면서 삿대질을 하자 그 남자는 도망쳤다. 그 목사는 김 목사에게 “당신이 목사라면 예수의 이름으로 저런 놈을 쫓아버려야지 왜 그렇게 당하고 있느냐”고 힐난했다. 인근의 한 여전도사는 “제가 기도 중에 누군가가 앞으로 10억을 줄 것이라는 응답을 받았는데, 10억이 들어오면 2억을 목사님에게 주겠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그런 정신분열과 광기를 누가 만들었느냐”며 “사람을 두들겨 패 죽이고도 `주님의 영광’이라고 찬양할 사람들까지 나오지 않을지 두렵다”고 했다.

인터뷰 도중 그가 가는 행적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그 부인으로부터 계속 휴대전화기로 “제발 물은 드세요!”라는 문자 메시지가 왔다.

교권이나 교리로 정죄하는 교인들 대신 한 생명의 안부를 걱정하는 사람이 그의 부인 말고도 이곳에 있었다. 그가 물을 마시지 않는다고 해도 그의 탈진을 걱정하며 물병을 그의 옆에 계속 갖다놓는 이가 있었다. 청소하는 아주머니였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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