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계 일단 “이전보다 성의있는 자세” 평가
`사과 대신 유감’ 받아들일지 여론 수렴키로
청와대 “진정국면 들어설것” 희망섞인 전망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의 종교 편향 관련 ‘유감’ 표명으로 불심이 잦아들기를 기대하고 있으나, 불교계는 발언의 진정성을 아직은 믿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대구·경북 지역 불교도대회를 위한 10일 사전모임을 예정대로 열기로 한 것도 불교계의 이런 기류를 반영하는 것이다.
물론 애초 한승수 국무총리가 주재할 예정이던 9일 국무회의를 이 대통령 주재로 바꾸고, 이 자리에서 대통령이 불교계에 유감을 표시하는 형식을 취한 것에 대해서는 “이전보다 성의 있는 자세”로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불교계의 요구가 유례없는 대규모 집회를 통해 모은 총의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날 정부가 내놓은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개정 등의 조처는 불교계의 이런 요구에 대한 응답으로는 크게 부족하다는 것이다.
불교계의 입장은 일단 ‘강공’ 유지다. 불교대책위원장 원학 스님은 “어청수 경찰청장 파면 등 불교계 4대 요구가 수용되지 않으면 부득이 지역별 범불교도대회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는 어청수 경찰청장을 파면하지 않기로 한 데 대해 “정부 여당이 15만 경찰의 총수를 파면하는 게 곤혹스러워 보호하는 모양새를 갖추는 것 같다”며 “스스로 사퇴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불교계는 이 대통령의 ‘사과’가 아닌 ‘유감 표명’을 받아들일지에 대해 즉각 결론을 내리기보다 여론을 수렴해 보기로 했다. 그러나 이날 실천불교승가회와 참여불교재가연대 등 불교단체들들은 일제히 정부의 대책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사태를 미봉하기 위한 것일 뿐이라며 강력히 비판했다. 근본주의적 종교인으로서 장로 대통령이 아니라 이 나라의 공복으로 돌아올 기미를 아직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불교계의 향배는 일단 10일 대구·경북 지역 불교지도자 간담회에서 가시화할 것으로 보인다. 대구·경북 지역은 이 대통령의 아성인데다 불교세가 강한 지역이기 때문에 민심 동향이 어떻게 나타날지 주목되는 곳이다.
정부는 이날 곧바로 1980년 전국의 사찰이 짓밟힌 ‘10·27 법난’의 피해자 명예회복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공포해 스님들의 명예회복 및 보상 절차에 착수하는 등 대구·경북 지역 간담회를 앞두고 불심을 달래기 위한 행보에 적극 나섰다. 이 대통령이 지난 8일 청불회(청와대불자회) 회장인 강윤구 사회정책수석을 경남 합천 해인사로 보내 조계종 법전 종정에게 추석 명절 인사를 전한 것도 이런 위무책의 일환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정부·여당에 대한 불신감이 워낙 높아져 있는 상태여서 이런 대책들이 당장 뚜렷한 효과를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불교계에선 이 대통령의 서울시장 재직 시절 ‘서울시 봉헌’ 발언에 대해 당시 법장 총무원장이 개인적 친분 때문에 안이하게 대처함으로써 오늘의 불씨를 키웠다는 비판론도 나오고 있다.
청와대 쪽은 이날 이 대통령의 유감 표명으로 성난 불심이 하루아침에 가라앉지는 않겠으나, 일단 불교계와의 갈등 사태가 진정 국면으로 들어설 수 있는 계기는 될 것으로 희망섞인 전망을 하고 있다. 그러나 사상 최대 규모의 ‘종교차별 규탄 집회’ 이후 어느 때보다 단단히 뭉쳐 있는 불교계가 정부 여당에 대한 압박의 끈을 쉽사리 놓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황준범 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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