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종교학’ 권위자 길희성 명예교수 시국비판
정권 창출 도움주며 공과 사 구분 약해져“정치세력화 위험…다종교문화가 유산”
이명박 정부 들어 종교편향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다종교 사회이면서 종교간 평화를 유지해 온 우리나라에서도 종교로 인한 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한 해법을 묻기 위해 경기도 분당의 한 오피스텔에 자리한 길희성(65·[사진]·서강대 종교학과) 명예교수의 서재를 찾았다. 서울대에서 철학을, 예일대에서 신학을, 하버드대에서 비교종교학을 연구한 길 교수는 기독교(개신교+가톨릭)와 불교를 동시에 아는 ‘드문’ 학자다.
“개인의 문제도 문제지만 현 상황은 개신교 보수세력이 뉴라이트로 정치화·조직화·세력화해 이명박 대통령이 그들의 도움을 받아 당선됐고, 그 정치세력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돼 있는 과정에서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한 공직자들의 무분별한 언행이 계기가 됐다. 불교도 과거엔 몇 사람만 다독거리면 무마가 됐지만, 이제는 그런 것 같지 않다. 더구나 보수 기독교가 정치세력화해 이를 주시하고 있다. 종교의 정치세력화는 위험하다. 불교도 정치의식이 깨어났다. 대통령이 잘못 다루면 상당한 사회적 갈등을 낳을 수 있다. 폭발력을 가지고 있다.”
‘간단치 않다’는 상황 인식이다. 그는 “다양한 종교가 있는 우리 사회에선 대통령이 개인적인 종교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위험한데, 이 대통령이 상당히 위험한 게임을 하고 있다”며 “대통령의 개인적 어려움이 있겠지만 공적인 지위를 통해 사적 종교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서구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치열한 종교전쟁의 아픔을 거치면서 세속화(정교 분리)가 상식이 됐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그런 기본 상식마저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은, 근본주의 신학에 그 원인이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성서를 통째로 진리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근본주의 신학은 성서를 본질적인 것과 부차적인 것으로 구분한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반동으로 20세기 미국 보수 일각에서 일어난 운동이었다. 그 근본주의가 국내 교회의 90% 이상을 지배하고 있다. 근본주의에선 경전을 하나님의 계시로 본다. 같은 계시종교인 이슬람과 유대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세 종교의 계시 내용이 다르다. 그래서 서로 싸운다.”
서구에선 계몽주의를 거쳐 현대에서 탈기독교화가 가속화하면서 전통신학을 재해석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추구하면서 변화해왔다. 반면 국내 개신교는 이런 변화를 거부한 채 보수 신학의 틀에만 갇혀 근본주의, 반지성주의, 반문화주의가 지배하고 있다고 그는 꼬집었다.
“옛날엔 한 문화권이나 종교권에 태어나면 다른 문화와 종교를 알 길이 없이 우물 안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며, 다른 문화와 종교를 얼마든지 알 수 있고 알아야 하는 시대다. 더구나 종교의 다양성은 우리 나라의 풍부한 유산이다. 이를 갈등 요소로 삼을 게 아니라 서로 상생하게 해야 한다.”
그는 “자기 우물 속의 것밖에 몰랐다는 무지의 자각이 참다운 지식의 시작이며, 자기밖에 모르는 게 미숙이고,자기를 객관화해서 볼 수 있는 게 성숙”이라며 “기독교인이나 불교인 모두 창조적으로 만나 성숙해질 때”라고 말했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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