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북단이 본 북한 표정
130명 적십자병원 수술장 준공식 참석
김정일 와병설 부인 않지만 언급 꺼려
민간 대북교류 단체인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대표 4명을 비롯한 130여명이 지난 20일부터 나흘간 평양과 백두산을 방문한 뒤 23일 돌아왔다. 이번 방북단은 지난 7월 중순 발생한 금강산 총격사건 이후 민간단체 최초의 대규모 방북단이다.
방북단의 목적은 지난 1년6개월 동안 지원해 지은 평양의 정성의학종합센터 품질관리실과 적십자병원 이비·두경부외과 수술장 준공식 참석이었다. 하지만 최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와병설이 나온 뒤라서 방북단의 관심은 온통 김 위원장에게 쏠려 있었다. 그러나 김위원장에 대한 질문은 이번 방북자들의 절대 금기사항이어서, 평양의 길거리 표정을 통해 간접적으로 북한의 요즘 분위기를 살펴볼 수밖에 없었다.
20일 오후 평양 순안공항을 빠져나오자 평양 시내로 가는 길목에서 방북단을 맞이한 것은 ‘위대한 김정일 동지를 수반으로 한 혁명의 수뇌부를 목숨 바쳐 사수하자’는 펼침막이었다. 호텔에 도착한 직후 북쪽이 김 위원장에 대해 잠깐 말을 꺼냈다. 북쪽 민족화해협력위원회(민화협)가 주최한 환영만찬 자리에서였다. 민화협 리충복 부회장이 옆자리에 앉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대표인 영담 스님(불교방송이사장)에게 “남쪽에서 (김위원장에 대해) 왜 그런 얘기들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항변투로 말을 꺼냈다. 영담 스님이 북쪽 사람들을 위로하는 듯이 응수했으나, 리 부회장은 더 이상 김 위원장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이튿날 북쪽의 안내에 따라 예정대로 병원 준공식 참석, 만수대의사당과 주체사상탑, 인민대학습당 등을 구경하면서 둘러본 평양 시내는 대체로 평온한 모습이었다. 여러번 방북을 했던 사람들에게도 특이한 점은 눈에 띄지 않았다. 방북단의 일원인 최재천 민주당 전 의원은 “민화협 관계자들이 김 위원장의 와병 사실에 대해 극구 부인하지는 않았다”며 “그러나 분위기로 보아 그렇게 심각한 상태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4월에 이어 방북한 법흥사 주지 도완 스님도 “5개월 전보다 오히려 거리에 아스팔트가 깔려 있고, 사람들도 더 활기에 차 보인다”며 “북한 체제의 특성상 김 위원장에게 심각한 이상이 발생할 경우 공직자들도 크게 경직될 가능성이 높은데 그런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방문단이 묵은 대동강변의 양각도호텔은 17~26일 열리는 평양영화축전에 참석한 외국인들로 평소보다 크게 붐비고 있었다. 방북단이 22일 백두산 관광길에 들른 김 위원장의 출생지에선 북한군과 중국군 고위장성들 수십명이 함께 활달하게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평양/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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