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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뉴스

김추기경 ‘존엄사 논란’ 다시 불붙다

등록 2009-03-31 18:39

주교회의 “죽음에 순응… 존엄사 아니다”

한기총 “존엄사법에 안락사는 빠져야”

“협의 수용하고 논의 물꼬 틀 때” 의견도

죽음은 오직 신만이 관여할 문제인가? 죽음의 주체인 당사자는 죽음의 과정에 아무런 관여를 할 수 없는가? ‘자연사’의 영역을 넘어선 의료기술로 인해 이런 고전적 질문의 본래 의미가 퇴색된 지 오래다. 따라서 누구나 예외 없이 한 번은 맞아야 하는 죽음의 과정을 인간의 존엄이 훼손되지 않은 채 맞기 위한 새로운 가치기준이 절실한 상태다. 최근 존엄사 법안이 한나라당 신상진 의원의 발의로 국회에서 제정될 움직임을 보이면서 이에 대한 종교계의 논쟁이 활발해지고 있다.

존엄사는 안락사와는 다르다. 사전적 정의를 따르면 안락사는 ‘불치병에 걸려 죽음의 단계에 들어선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그 환자를 죽게 하는 것’이고, 존엄사는 ‘환자의 고통이 그다지 문제되지 않으며 환자 자신이 의식불명으로 인해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을 때 소생 가능성이 없는 혼수상태나 뇌사상태의 환자가 품위 있게 죽을 수 있도록 생명유지 장치를 제거해 생명을 단축시키는 행위’다.

병원의 중환자실엔 이미 식물인간이 되어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를 인공호흡기로 연명해야 하는지에 대한 환자 가족과 의료진들의 고민이 계속되고 있다. 반면 존엄사를 인정할 경우 경제적으로 빈곤한 이들은 병이 악화돼 남은 가족들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전가시키게 될 경우 죽어줘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을 껴안을 수밖에 없다거나 중환자를 쉽게 방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2002년 대한의사협회는 ‘임종환자 진료 중단 지침’을 마련했다가 ‘소극적 안락사’의 다른 주장으로 내몰리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식물인간 상태의 76살 김아무개 할머니에게서 인공호흡기를 떼어내라는 판결을 내렸다. 세브란스병원은 이 판결에 불복해 고등법원에 항소했지만 고등법원은 1심대로 존엄사 쪽의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2004년 서울 보라매병원에서 경제적 이유를 내세운 가족의 뜻에 따라 치료를 중단한 의사들을 살인방조죄로 형사처벌한 전례가 있어서 대법원에서 어떤 판결이 내려질지는 알 수 없다.

지난해 세브란스병원을 상대로 존엄사 허용 판결을 받아낸 변호인 쪽은 1심 때 연명 치료를 거부한 고 박경리 작가의 사례를 법정자료로 제출한 데 이어 세브란스병원이 상고할 경우엔 대법원에 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인공호흡기를 비롯한 기계적 치료를 거부한 김수환 추기경의 사례를 제출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그동안 ‘생명윤리’문제에서 원칙주의를 견지해온 한국가톨릭주교회의는 최근 존엄사 반대를 천명하고 나섰다.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위원장 장봉훈 주교)는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을 두고 사회 일각에서 ‘존엄사를 선택했다’, ‘인공호흡기만 떼내는 전형적인 존엄사다’, ‘추기경의 죽음이 존엄사법 제정에 힘을 싣는다’는 말로 김 추기경의 죽음까지도 일부 집단의 주장과 이익에 악용당하고 있음은 매우 슬픈 일”이라며 “김 추기경의 선종은 결코 존엄사가 아니라 노환으로 인해 이제 더는 회피할 수 없는 죽음이 다가오는 것에 대해 겸손하게 순응하고, 당신의 모든 삶을 온전히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손에 맡기시면서 지상의 삶을 마감한 것”이라고 밝혔다. 기계적인 장치를 통해 생명을 연장하려고 하지 않았고 시도되지도 않았으며, 죽음까지도 실존적 삶의 한 부분으로 기꺼이 받아들이시면서 하느님께로 나아갔다는 것이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도 30일 “‘존엄사 법안’이 포괄적이어서 ‘안락사’까지 포함될 가능성이 있고, 의사의 치료 한계와 치료 중지에 대한 규정이 빠져 있다”며 “국회가 존엄사법을 제정하는 대신에 ‘무의미한 (연명) 치료 중단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안락사 포함 가능성’에 대해선 우려를 나타냈지만 가톨릭 쪽과는 다른 어조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생명윤리정책협의회도 지난 27일 ‘안락사와 존엄사 어떻게 볼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이 토론회에서 발제한 박일준(감신대 및 이화여대) 박사는 미국 플로리다의 테리 샤이보 사례(뇌사 판정을 받은 아내 테리의 생명유지 장치를 끄려는 남편의 법적 시도가 무산되고 15년간 식물인간 상태로 있다가 2005년 사망한 사건)를 들어 “스스로 의사를 표시하고 결정할 수 없는 단계에서 ‘살 권리’라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인가”라며 “생명의 존엄성 원리는 생명 앞에서 협의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지만 이제 그 협의를 받아들이고 시작할 때가 되었다”고 논의의 물꼬를 틀 것을 주장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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