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 풀이집 낸 원철 스님
‘깨달음’이란 인류 최고의 의식 세계를 노니는 선불교의 화두는 일반인들에겐 도무지 잡을래야 잡을 수 없는 먼나라의 얘기일 뿐이다.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을 묻는 화두에 조주는 ‘뜰 앞의 잣나무’라고 하고, 운문은 ‘마른 똥막대기’라고 했다. 그나마 말은 나은 편이다. 어떤 때는 고함을 지르고, 때론 방망이로 후려치며, 가끔은 발목이 부러지도록 문을 닫아버린다. 엉뚱하다못해 황당하다.
군더더기 없는 글솜씨로 법정 스님 이후 불교계 최고의 ‘문재’로 손꼽히고 있는 원철(사진) 스님이 외계인들의 소음처럼 이해 못할 그런 화두의 세계를 현대인들의 언어로 풀어냈다. <할로 죽이고 방으로 살리고>(호미 펴냄)란 책에서다.
‘엉뚱·황당 4차원 세계’ 현대인 언어로 풀어내성철 스님 비판에도 끄덕…“논쟁 거쳐야 발전”
일찌기 난해한 한문경전인 <선림승보전> 상·하권을 번역해냈던 그는 해인사, 은해사, 실상사, 동국대, 조계사에서 경전과 선어록을 강의해온 실력파다. 월간 <해인> 편집장을 지내기도 했던 그는 몇년 전 조계종 총무원으로 불려와 재정국장을 맡고 있다. 그는 ‘수도 서울’에 있는 ‘수도승’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재치도 지니고 있다.
원철 스님은 조계종의 정신적 지주인 종정 법전 스님의 상좌다. 법전 스님은 성철 스님의 법을 이었으니, 그에게 성철 스님은 할아버지 뻘이다. 제자들에게 책도 보지 못하게 한 성철 스님이 화두를 책으로 풀어낸 것을 용납할 리 없다. 하지만 성철 스님은 성철 스님이고 그는 그다.
성철 스님의 영향을 받는 선객들은 가끔씩 선(禪)을 문자로 풀이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그에겐 옹골찬 결기가 있다. 그가 조계사 앞 목욕탕에서 발가벗은 채 우연히 만난 선승과 화두선을 놓고 결전을 벌인 일화도 있다. 아무리 맛있어도 ‘그림의 떡’이라면 그것을 어디다 쓸 것이냐 게 원철 스님의 생각이다. “손을 대지 않아도 대중들이 먹을 수 있다면 두말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하니 손을 대서라도 대중들이 먹기 좋게 해야겠다”는 것이다.
그가 그런 용기를 낸 것은 경전이 한눈에 들어오던 체험 이후였다. 성철 스님이 열반에 든 후에야 그의 전집 수십독을 독파하기 시작한 그는 어느날 모든 경전의 요체가 씨줄과 날줄이 하나로 관통되듯 눈에 들어왔단다. 그 이후 성철 스님을 ‘몇백년에 한 번 날까말까한 선사’로 인정한 그지만 그 도그마에만 갇혀 있지는 않는다. 성철 스님 아래서 참선을 배운 재미불교학자 박성배 교수가 성철 스님의 ‘보조국사 돈오점수 비판’에 대해 혹독한 칼날을 들이댄 것에 대해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중생이란 어차피 자신의 관점과 업으로 보게 마련이고, 또한 백가쟁명식 논쟁을 거쳐야 사상도 발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겉의 행동도 중요하지만 형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는 것”이라고 했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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