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금 대신 구치소살이 선택한 조헌정 목사
4년전 대추리 지키다 벌금형 판결받아
‘자본주의 대항’ 신념지키려 죄수복 입어
서울 중구 을지로2가 향린교회 담임 조헌정(57·사진) 목사는 최근 소리 소문 없이 구치소에 다녀왔다. 2006년 4월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수용지에서 경찰들에게 끌려가던 청년들을 지키려다가 공무집행방해로 벌금형을 받은 그는 벌금을 내는 대신 몸으로 때웠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더구나 향린교회엔 그를 따르는 수백명의 신자들이 있고, 그는 주일 설교를 해야 하는 담임 목사다. 하지만 돈으로 해결하는 것은 자본주의와 폭력과 야만에 맞서 맨몸으로 평화운동을 해온 운동정신에 맞지 않는다고 그는 판단했다.
그래서 그는 4년 전 빈몸으로 평택에 갔을 때처럼 서울구치소로 걸어들어갔다. 4년 전에도 그는 홀로 차를 몰고 대추리로 갔다. “농수로를 차단하기 위해 경찰병력이 투입됐다”며 “와서 도와달라”고, 누군가 교회 누리집에 올린 호소를 듣고는 외면할 수 없어서 달려간 것이 옥살이로 이어졌다. 경찰과 용역업체 직원 등 1천여명의 무장병력에게 대추리를 지키던 50~60여명이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것을 저지하던 중 경찰 간부의 멱살을 잡은 죄로 그는 경기도 광주경찰서에 유치장 신세를 졌다. 당시 건장한 경찰들로부터 강압적으로 지문을 날인을 당하는 과정에서 손가락에서 피를 뿌리기도 했다. 그로 인해 주일도 경찰서에서 보내야 했다. 입으로 하는 설교만큼이나 삶으로 쓰는 ‘몸 설교’를 중시하는 그의 뜻대로 온몸으로 3일간 설교를 하고 나온 것이다.
그는 처음 벌금 300만원을 받았다가 대법원까지 가서 벌금 70만원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하루 5만원씩, 3일간의 유치장살이를 제하고 남은 55만원을 내는 대신 그는 지난달 13~23일 구치소로 들어갔다. 한신대 재학 시절 거리 시위를 하다가 경찰서에서 한달간 신세를 진 적은 있지만 죄수복을 입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는 “벌금형이라는 게 생계가 어려운 사람들이 밥벌이할 기회를 빼앗지 않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구치소에 들어가보니 돈 있는 사람들은 모두 벌금을 내 없고, 하루 5만원씩도 내기 어려운 약자들만 남아 있더라”고 혀를 찼다.
향린교회 설립자인 ‘민중신학의 대부’ 안병무 박사의 제자인 조 목사는 이민한 부모를 따라 간 미국에서 신학대학을 나와 메릴랜드주 벨치빌 한인교회와 미국 장로교 최초의 한미연합교회인 벨츠빌 장로교회의 담임목사를 16년간 지냈다. 동양인 최초로 미국 장로교의 수도노회 노회장까지 맡으면 탄탄대로를 걷던 그는 2003년 가족도 뒤로 한채 고국에 돌아와 ‘평생 약자들과 함께 하겠다’던 청년시절의 뜻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다음달 2일 전태일기념사업회의 새 이사장으로 추대돼 약자들을 위해 자신의 몸을 불사른 전태일의 정신을 잇는 또 다른 몸 설교에 나설 예정이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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