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진, 정권-종단 ‘선거유착’ 제기
봉은사 주지인 명진 스님이 대선 당시 자승 총무원장과 이명박 대통령 쪽의 유착 의혹을 제기함에 따라 봉은사 직영사찰 전환 사태가 거센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명진 스님이 26일 밝힌 폭로 내용은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좌파 주지’ 발언 이상으로 충격적이다. 한 종단의 지도자가 여당 후보의 형님을 ‘모시고’ 다니며 선거운동을 돕고, 자신의 총무원장 선거 과정에서도 여권과 교감하고 있었던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명진 스님은 특히 지난해 총무원장 선거 당시 자승 총무원장이 ‘저쪽이 당신과 무차회(실천불교승가회)의 추대를 받는 것을 꺼린다’고 직접 고백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 과정에까지 여권이 일정한 정도 개입했을 개연성을 보여주는 발언이다.
‘선거 과정에서 자승 스님이 청와대와 국정원 도움을 받고 있다는 설이 파다했다’는 명진 스님의 말이 아니더라도 여권과 총무원의 유착설은 그동안 총무원 주변에서 심심찮게 나돌았다. 총무원의 ‘봉은사 직영 지정’ 결정 전엔 총무원의 핵심 간부가 청와대에 들어갔다 나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명진 스님의 폭로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종단 선거에 개입한 여권에 대한 비판은 물론 불교의 자주성을 훼손한 자승 총무원장에 대한 책임론도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자승 총무원장이 총무원장 선거에서 여권의 도움을 받았다면 스스로 정치적 외압을 불러들여 종단의 생명인 자주성을 훼손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1994년 종단개혁 이후 불교계는 정치적 자주성을 지켜오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져왔다. 이런 상황에서 사실상 모든 계파의 합의에 의해 추대된 총무원장이 여권과 유착한 것으로 밝혀질 경우 불심의 거센 비난을 피할 방법은 없다.
명진 스님의 이날 2차 폭로로 인해 중진 스님들과 불교단체들에 의해 시도되던 대화 국면과는 전혀 다르게 ‘봉은사 문제’가 아닌 ‘종단의 자주성’ 문제가 주요 논점으로 등장하게 됐다.
‘봉은사 직영 지정’에 대한 명진 스님의 주장은 단호하다. 잘못된 결정을 본래대로 되돌려놓지 않고선 대화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명진 스님은 승가단체 스님들과 재가단체 대표들의 방문을 받은 자리에서도 이런 뜻을 굽히지 않았다. 명진 스님은 “원로회의와 중앙종회가 성명을 내 총무원장 편에서 나를 압박한 데 이어 본사주지들까지 모여 같은 성명을 내서 나를 포위하려 들지만, 나는 봉은사 주지에 연연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나 자신을 던져 진실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총무원이나 여권의 대응 수위에 따라선 추가 폭로 가능성도 있다.
특히 안상수 원내대표의 외압 발언에 대해서는 불교단체들과의 공감대도 형성돼 있다. 이날 불교단체 대표로 한나라당을 항의 방문한 손상훈 교단자성센터 국장은 “불교계 내부의 문제에 여권을 끌어들인다고 하는데 원인을 제공한 것이 누군데 그처럼 적반하장이냐”며 “안 대표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불교단체 대표들은 정병국 한나라당 사무총장에게 “안 원내대표가 조계종 총무원장님과 만난 공적인 자리에서 명진 스님의 거취를 거론한 것은 너무나 무례하고 몰상식한 행위로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고 정교분리의 원칙을 어긴 것”이라며 “안 원내대표가 솔직히 진실을 밝히고 모든 공직에서 사퇴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권의 외압 의혹이 여권과의 유착 의혹으로 번짐에 따라 그동안 묵빈대처(무대응)로 일관해온 자승 총무원장도 더는 입을 봉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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