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그림인생’ 전시회 여는 조광호 신부
가톨릭은 민족종교가 아니라 보편종교다. 그래서 가톨릭 사제의 국적은 바티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젊은 날 가톨릭에 몸을 맡긴 신부가 환갑이 넘어 ‘코리아’가 가득 담긴 그림을 들고 나왔다. 40년간 ‘그림 인생’을 살아온 사제의 화폭엔 신윤복의 여인들이 등장하는가 하면, 용산 참사 현장과 환경 재앙으로 아우성치는 생명들 몸짓이 전통의 원색에 담겨 있다. 한복을 입은 마리아와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기 예수까지 모든 것이 ‘한국적’이다.
‘조광호 40년 흔적’이란 부제가 붙은 전시회의 이름은 ‘코리아 환타지’. 10일 오후 4시 개원해 새달 30일까지 전시될 공간은 경기도 파주 헤이리의 북하우스 아트스페이스와 갤러리한길이다.
조광호(63·사진) 신부가 40년 동안 그린 그림 150여개를 전시하기 위해 선택한 넓고 자연친화적인 공간이자 휴전선과 북녁땅이 코앞에서 있어서 더욱 ‘한국적’인 곳이다.
“자기 색깔과 토양과 독특한 문화속에서 인류의 공통적인 것도 존재하지요. 그래서 가장 독창적인게 보편적인 것이죠.”
봄햇살에 그을린 들판의 농부처럼 투박한 조 신부는 전시회를 앞두고, 그를 키워낸 ‘한국’을 드러내려던 의도를 감추지않았다. 1998년에 장안에 화제가 됐던 월간 <들숨날숨>을 창간해 종교를 넘다든 새로운 문화운동을 펼쳤다가 5년만에 문을 닫았지만, 그의 꿈은 여전히 잠들지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인지 모른다.
그의 남다른 꿈은 사춘기로부터 거슬러올라간다. 가톨릭과는 거리가 먼 유가적 가풍에서 자란 그는 고교 1학년 때 ‘왜 사는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문과 맞닥뜨렸다. 그 때 노동운동하던 아일랜드 출신의 양노엘 신부를 만났다. 고교 1한년 때부터 방학 때면 노동판을 전전하면서 생땀을 흘리며 홀로 감당하기 힘든 정신적 문제를 직면하던 그는 양노엘 신부와 같은 사제의 길로 들어섰다. 하지만 정작 신학교에 가보니, 대부분의 시간을 책상에서 보내는 삶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그가 ‘예술노동자’라고 부르는 화가의 길을 택했는지 모른다.
어려서부터 그림그리기를 좋아했던 그는 1970년대 한국에 온 프랑스 선교사 앙드레 부통의 지도를 받아 벽화를 배웠고, 35살 때인 1985년 독일 뉘른베르크 쿤스트아카데미로 유학을 가 5년간 현대회화를 배우고 돌아와서는 다시 오스트리아에서 동판화와 스테인드글라스를 연구했다. 2002년부터는 인천 송도에 있는 인천가톨릭대 조형예술대학의 학장으로 학생들을 단련시키고 있다.
부산 남천주교좌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숙명여대박물관 로비의 스테인드글라스, 서울 지하철 2호선 당산철교 구간의 대형벽화, 연세대 송도국제캠퍼스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와 벽화 등 국내외 가톨릭교회 20여 곳에 있는 대형 이콘화와 제단벽화, 스테인드글라스 등이 빚어지는 동안 그의 손엔 어느 노동자와 농부 못지않게 굵은 군살이 자리했다.
지금 헤이리에 가면 그 긴긴 세월을 돌아와,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국화’같은 연꽃들과 함께 2000년 전 이스라엘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마음 속에 살아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다. (031)955-2094.
파주 헤이리/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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