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공양 의미 축소하는 종단 행태에 실망
“돌아올 비난 비판 실망 모두 약으로 삼겠다”
최근 문수스님의 소신공양이후 조계종단의 행태에 환멸을 표하며 강력히 비판했던 수경 스님이 14일 잠적했다.
수경 스님은 화계사 주지직과 불교환경연대 대표직을 내놓고, 조계종 승적까지 반납했다.
수경 스님은 화계사내 자신의 방을 정리하고 자신의 가사와 장삼을 법당 불전에 올려놓고는 휴대폰까지 해제한 채 잠적한 상태다.
수경 스님은 잠적 직전 ‘다시 길을 떠나며’라는 글을 남겨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을 보면서 생명을 던지지 못한 채 대접이나 받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처절한 고뇌를 담았다.
수경 스님은 이 글에서 “돌아올 비난과 비판, 실망, 원망 모두를 약으로 삼겠다”면서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나 어느 따뜻한 겨울 바위 옆에서 졸다 죽고 싶다”고 썼다.
수경 스님의 측근인 불교환경연대 집행위원장 지관 스님은 “최근 스님이 구토증세를 보일만큼 심신이 극도로 피로해진데다 문수 스님 소신공양 이후 소신공양의 의미를 축소하는 종단의 행태에 크게 실망했다”고 밝혔다.
조현 종교전문기자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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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경스님이 남긴 ‘다시 길을 떠나며’
“대접받는 중노릇을 해서는 안 된다.”
초심 학인 시절, 어른 스님으로부터 늘 듣던 소리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그런 중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칠십, 팔십 노인분들로부터 절을 받습니다.
저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 더 이상은 자신이 없습니다.
환경운동이나 NGO단체에 관여하면서
모두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한 시절을 보냈습니다.
비록 정치권력과 대척점에 서긴 했습니다만,
그것도 하나의 권력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슨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에 빠졌습니다.
원력이라고 말하기에는 제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을 보면서 제 자신의 문제가 더욱 명료해졌습니다.
‘한 생각’에 몸을 던져 생멸을 아우르는 모습에서,
지금의 제 모습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저는 죽음이 두렵습니다.
제 자신의 생사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제가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이대로 살면 제 인생이 너무 불쌍할 것 같습니다.
대접받는 중노릇 하면서, 스스로를 속이는 위선적인 삶을 이어갈 자신이 없습니다.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납니다.
조계종 승적도 내려놓습니다.
제게 돌아올 비난과 비판, 실망, 원망 모두를 약으로 삼겠습니다.
번다했습니다.
이제 저는 다시 길을 떠납니다.
어느 따뜻한 겨울,
바위 옆에서 졸다 죽고 싶습니다.
2010년 6월 14일
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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