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심정
중국 옛 선사들의 자취 현지 순례무상, 선종 창시 달마와 함께 500나한에 당당히순례 이끈 스님의 1천년 건너뛴 화두풀이 ‘선물’
지난 4일 중국 쓰촨성 청두. 2년 전 지진으로 7만여 명이 사망하고 500만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대재앙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개발붐으로 옛자취를 찾아보기 어려운 곳이다. 그런 곳에서 지난 16일 한국에서 온 순례객들이 옛 선사들의 자취를 찾았다. 조계종 중앙신도회 산하 불교인재원 주최로 중국 선적지(禪跡地) 순례에 나선 이들이었다.
중국 사찰엔 되레 선 정신 흐릿
순례단은 조계종 원로의원으로 경북 봉화 금봉암에 주석하고 있는 고우 스님(73)이 이끌었다. 6년 전부터 매년 선사들의 발자취를 찾는 고우 스님의 그림자가 되어준 경북 문경 대승사 주지 철산 스님(55)을 비롯한 36명의 순례단이 고우 스님의 뒤를 따랐다.
순례단은 무상선사의 영국사와 어하굴을 거쳐 ‘선의 황금기’를 연 마조 도일의 고향에 세워진 나한사에 이어 원오극근 선사가 선어록인 벽암록을 강의하고 열반했던 소각사를 찾았다. 그러나 문화혁명을 거친 중국 사찰에서 ‘선의 정신’은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순례객들은 1천여 년 전 선의 정신을 현대의 언어로 풀어내는 고우 스님의 말에서 옛 선사들의 향기를 느끼는 듯했다.
동문서답으로 일관하는 듯한 선문답은 현대인들에겐 말장난쯤으로 치부된다. 하지만 고우 스님은 “나와 너, 주관과 객관을 초월한 자리에서 나오는 소리”라고 했다. 나만을 아는 이기심이 치성하고, 남의 의견을 경청하기보다는 내 목소리를 높이기 바쁜 시대엔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소리다. 옛선사들은 일심으로 화두를 들어 무의식까지 정화되는 경지에서 선문답을 주고받았단다.
고우 스님의 말 가운데서 순례단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선문답이 아니라 오히려 현시대에 대한 선적인 방편이다. 예컨대 고우 스님은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벌어지고 있는 정부의 종교편향을 놓고 서울광장에서 규탄집회를 열기보다는 이 대통령을 위해 기도를 하는 것이 더 불교적인 것이라고 했다.
내 종교, 네 종교 차별심 넘어
유마 거사가 탁발하러 온 사리불(석가모니의 수제자)에게 “외도(타종교인)에 떨어져 그들과 어울릴 정도가 되어야 내게 밥을 얻어먹을 수 있다”고 한 것처럼 ‘선의 세계’에선 내 종교, 네 종교의 차별심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고우 스님은 최근 이 대통령이 내놓은 ‘공정한 사회’ 에 대해서도 선적인 해법을 내놓는다.
“우리 사회엔 용이 너무 많아서 탈이다. 누구나 원하는 고위직을 획일적으로 나눌 수도 없다. 성공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자기가 하는 일을 남과 비교하지 말라. 귀천을 따지기보다는 자기가 하는 일의 가치와 의미를 발견해라. 그렇게 자주적인 사람이 되라. 그러면 기쁘게 열심히 일하게 되니, 자연스레 자기 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을 수도 있고, 명예를 얻을 수도 있게 될 것이다.”
고우 스님은 “서로 비교해 우열을 따지고 무시하고 부러워하기보다는 비교하지 않고 서로 존중하며 더불어 사는 것이 공정한 사회”라고 했다.
시공을 초월해 1천여 년 전에서 현재로, 중국에서 우리나라의 화두 풀이로 돌아온 것이야말로 순례보다 소중한 선물이었다.
석가모니 목면가사 물려받아
이번 순례의 백미는 무상 선사의 흔적을 찾은 것이었다. 무상선사(684~762)는 신라 성덕왕의 셋째 아들로, 달마의 선맥을 이은 당대의 고승이었으나 오랫동안 역사 속에 묻혀 있었다. 그의 존재는 1907년 영국의 탐험가 스테인이 돈황에서 무상오경전을 발굴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졌다. 무상의 기록이 담긴 무상오경전은 현재 대영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무상은 중국의 근대 최고 학자인 후스 박사가 무상오경전에 실린 <역대법보기>를 세상에 알림으로써 선종사에 가장 중요한 인물로 떠올랐다.
무상은 중국 선종의 5대 조사인 홍인의 법을 이은 지산 선사의 제자 처적 선사의 수제자로서 석가모니로부터 전래된 목면가사를 물려받았다고 한다.
쓰촨성 최대 사찰 가운데 하나로 무상이 처적으로부터 법을 물려받은 영국사 법당엔 지선 선사, 처적 선사, 무상 선사 등 3대 조사상을 모셔두고 있었다. 또 왼쪽 거대한 벽체엔 무상이 자신의 손가락을 태우며 강고한 의지를 보여 처적의 제자로 입문하는 과정과 산발한 채 고행을 해 깨달음을 얻고 널리 법을 펴는 내용을 담은 웅대한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중국 4대 선사의 한 명으로 꼽히는 영국사 방장 청덕 스님(88)이 건네준 ‘사찰역사’에 신라왕자인 무상이 2년 정도 처적의 곁에 머문 뒤 이곳에서 10리 정도 떨어진 천곡산 어하굴에서 홀로 고행을 해 깨달음을 얻은 내용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동굴에서 풀잎으로 몸을 감싼 채 흙을 먹으며 수행한 무상을 사냥꾼이 산짐승인 줄 알고 활을 쏠 뻔 했다는 내용도 담겨있다.
선맥 우리나라로 옮겨온 이유
성도 자중현 영국사(옛 덕순사)를 거쳐 시골길 40분을 걸어 당도한 어하굴은 깊이 10여 미터 정도의 넓은 바위굴이었다. 인근 농민들이 농업용수로 쓰기 위해 물을 가득 채워 놓았다. 무상으로 보이는 불상이 동굴호수 속에 목 아래가 잠겨 있다.
무상과 관련해 가장 충격적인 내용은 무상이 티베트에 최초로 불교를 전해준 인물이자 선의 황금기를 연 마조 도일의 스승이었다는 점이다. 육조 혜능을 이은 남악 회양의 법제자로 알려진 마조가 무상의 제자라는 내용이 규봉 종밀의 <원각경대소초>와 후스 등의 역사적 고증에 의해 새롭게 밝혀졌다. 마조는 우리나라의 구산선문을 연 진전사 도의, 태안사 혜철, 실상사 홍철 등 3대 선사에게 법을 전한 서당 지장 선사의 스승이다. 마조의 또다른 제자인 백장 회해가 ‘강서의 선맥이 모두 동국으로 옮겨가는가’라고 한탄할 만큼 우리나라로 선맥이 옮겨진 것도 신라왕자 무상의 제자인 마조가 제자 서당 지장에게 신라승들을 잘 지도해 주도록 특별히 부탁한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마조 스님의 고향 사찰로 마조 스님을 모신 나한사의 500나한을 모신 방에선 무상선사의 당당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500나한은 역사상 중국불교가 성인으로 추종하는 이를 모신다. 500나한엔 인도인을 제외한 외국인으로는 유일하게 무상이 있다. 마조의 스승으로 꼽힌 남악 회양이나 육조 혜능조차 포함되지 않은 500나한에 무상이 인도출신 달마 조사와 함께 포함돼 있었다.
청두/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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