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문즉설 무소유의 길을 묻다] ② ‘공동체의 삶’ 박기호 신부
2일 저녁 7시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펼쳐진 박기호(61·산위의 마을 촌장) 신부의 즉문즉설 현장.
‘이 시대 무소유의 길을 묻다’라는 주제로 생명평화결사와 <한겨레>가 마련한 두번째 즉문즉설에 참석한 청중 300여명은 2004년부터 소백산에서 신앙 생태공동체 ‘산위의 마을’을 일구어 살아가고 있는 그에게 평소 궁금했던 질문들을 쏟아냈다.
<노동의 새벽> 시인으로 달변가인 동생 박노해씨와 달리 평소 거의 말수가 없고 말투도 어눌한 박 신부는 “인간관계에서 (특별한) 비법은 없다”거나 “살아 보니 정말 어렵다”는 솔직 담백한 답변을 토해놓았다. 박 신부는 “과거엔 장유유서라는 유교적 질서로 지배했지만 이제 신세대는 자기 감정을 거르지 않고 표현하고, 기존 세대는 이를 잘 수용하지 못해 갈등을 일으키며 서로 힘들어한다”며 “기본적으로 대화를 많이 하고,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연을 파괴할수록 그 속의 인간은 죽어가고 있다…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 자체가 무소유적 삶의 실천이다.
- 왜 공동체로 사는가?
“사도행전에 보면 서로 가진 것을 내어놓고 살았더니, 그 가운데 가난한 사람들이 아무도 없더라는 기록이 있다. 그런 공동체 삶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실패해도 남는 장사라고 여겼다. 그런데 많건 적건 자기 것을 내놓고 시작해보자고 하니, 잘 안 모이더라.(청중 웃음) 지금까지 11가구가 들어와 도중에 4가구가 떠났고, 7가구가 함께 살고 있다.”
- 물질만능시대, 욕망의 시대에 그걸 내려놓고 함께 어울려 산다는 게 가능한가?
“직장에서 하루 8시간 근무하는 것도 마음이 안 맞으면 상당히 어려운데, 아침부터 식사도, 일도, 일 끝나면 기도도 함께 하고, 잘 때만 각자 방에서 자고, 자고 나서 눈뜨면 또 만나니 관계가 쉽지 않다. 부부간에도 마찬가지 아닌가. 신부도 수녀도 마찬가지다. 어려운 관계를 극복해 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 자체가 공동체 수행이다.”
- 인간에게 무소유의 삶이 영성생활에 필수적인가?
“세상에서 빛이 가장 먼저 창조되고, 다음에 하늘과 땅, 물, 식물, 동물, 마지막 사람이 창조됐다. 뒤에 창조된 것일수록 불완전한 존재다. 인간은 먼저 창조된 자연의 틈새에서 살아가는 존재다. 그런데 자연을 자기 마음대로 재단하고 바꾸려 한다. 그런 욕심을 내려놓고, 대량 생산, 대량 소비, 대량 폐기에서 벗어나 최소한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소유적 삶으로 볼 수 있다. 영적 존재인 인간의 영성과 소유에 대한 욕망은 서로 상극이다.”
- ‘4대강 살리기’가 지구를 죽이고 있다.
“지구나 생태는 죽는 게 아니다. 일시적으로 상처 받을 뿐이다. 그 안에 사는 인간이나 생명체들이 망하고 죽는 것이다. 이 정부에서 4대강을 죽자 사자 파내 다음번 선거 때쯤 준공 팡파르를 울리며 온 텔레비전 뉴스를 도배질하고, 유람선을 띄우는 푸닥거리를 통해 표를 얻으려 할 것이고, 다음 정부는 중간에 터널을 이어 대운하를 할 생각을 하겠지만 그렇게는 안 될 것이다. 한국 사회의 지성과 국민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는 경제만의 프레임이 물러나고 도덕과 정신세계를 세우자는 때가 오면 강은 도로 메워질 것이고, 복원될 것이다. 자연에 대한 신뢰를 가져야 한다. 생태의 주인이신 존재가 다 복원시킨다. 다만 돈을 한없이 퍼부어대니 허리띠 졸라매는 국민들이 감내하기 어려운 것이다.”
- 물욕과 소유욕 때문에 괴로운 적이 있는가?
“신부로 사는 게 좋은 게 있다면 가지지 않아도 풍요롭고, 부족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개인이 소유에 집착하는 것은 소유하지 않으면 불안하기 때문이다. 국가나 공동체가 많은 것을 대신해주어 가난한 삶, 무소유의 삶, 욕심 없는 삶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인간에겐 세가지 기본 욕구인 식욕, 성욕, 수면욕이 있다. 내 먹을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식욕이 소유욕으로 나타나고, 성욕은 지배욕으로 나타나고,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내보이려고 하는 게 명예욕으로 나타난다. 함께 먹고 함께 사는 길이 있다는 믿음이 바탕이 되면 욕심을 버리는 무소유적 삶에 다가설 수 있다.”
- 현대인들의 신앙생활이 제대로 되어가고 있는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는데, 결국 대량 생산, 대량 소비, 대량 폐기를 통해 세상의 생태를 파괴하는 것이었다면 문제가 아니겠는가. 인간의 정신을 포박하면서 모든 인간의 주체성을 지배하는 마케팅에 예속되어 사는 삶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호화 여객선으로부터 뛰어내릴 수 있다면 뛰어내리는 것이 살길이다.”
- 박노해 시인이 동생이고 여동생은 수녀다. 온몸을 불살라 사회를 위해 던지게 한 집안 교육이나 내력이 있는가?
“그런 것 없다. 뭔가 거창한 표현으로 신화화할 필요가 없다. 저희 집만 가난하고 어렵게 산 게 아니고 그 시대엔 대부분이 그랬다. 가정의 영향보다는 각자 삶이 각자를 만들었다고 보면 된다.”
- 물질과 소유에 대한 중독성이 강한데 어떻게 끊을 수 있나?
“산위의 마을에서 주일날 아침 기도 시간을 아무리 융통성 있게 바꾸어주며 외출하라고 해도 사람들이 외출 안 했다. 차가 없기 때문이다. 산위의 마을은 선풍기도 한 대 없다. 그렇게 한여름을 난다. 물질이나 도구가 인간을 만들기도 한다. 무소유를 너무 관념적으로만 생각할 게 아니고 평소 좀더 적게 쓰고, 좀더 욕심을 내려놓는 게 필요하다.”
글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 세번째 즉문즉설|‘좋은마을’ 이남곡 대표
9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
오는 9일 저녁 7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 대성당에서 진행될 세번째 즉문즉설 강연자는 ‘좋은마을’ 이남곡(66) 대표다. 그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과 겸손으로 진리를 향한 실험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는 2004년부터는 불치병에 걸린 부인의 치유와 요양을 위해 전북 장수의 산골로 이주해 농사를 짓고 된장·고추장 등을 담그며 살아왔다. 그 산골엔 그와 삶을 함께하려는 이들이 모여 ‘좋은마을’을 일구었다. 지난해부터 서울에서 매주 ‘논어 읽기’ 모임을 이끌고 있다.
조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