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계자’ 문형진 통일교 세계회장
‘통일교’는 지난 40여년 동안 주류 기독교로부터 ‘경계대상 1호’였다. 요즘은 새롭게 부흥하는 신흥교단들에 ‘1호’의 자리는 내주고 있지만, 2009년 출간된 통일교 문선명(91) 교주의 자서전인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이 100만부가 팔릴 정도니 통일교에 대한 경계심은 여전하다. 그런 통일교의 국내 교세는 어느 정도일까.
문형진(32·사진 왼쪽) 통일교 세계회장이 18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를 구체적으로 밝혔다. 문 교주의 7남6녀 중 막내아들인 문 회장은 3년 전 문 교주의 후계자로 지목돼 통일교의 영적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문 회장은 “1970년대 예배를 보고 헌금을 하는 한국 내 통일교 신자가 1만6천명이었다가 30년 후인 2005년 1만1천명으로 줄어들었고, 지난해 말엔 1만9천명으로 다시 늘었다”고 소개했다. 통일교는 지금까지 인연을 맺은 이는 18만여명이지만, 한 달에 두번 정도 예배에 참석하고 헌금을 내는 이들을 기준으로 한 수치라고 설명했다.
하버드대 철학과, 하버드신학대학원을 마친 엘리트적 면모를 내보이는 그는 기자들의 질문에 나름대로 ‘솔직하고 유연한’ 답변으로 통일교의 변화를 보여주었다.
그는 “지난 1994년부터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란 이름을 써왔으나 지난해 2월부터 ‘통일교’라는 명칭을 쓴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문 회장의 부인 이연아(오른쪽) 목사는 “외부인들이 다른 이름 아래 숨는 게 아니냐고 말해 당당하게 밝히자는 뜻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문 회장은 북한 정권과 남다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문 교주의 비화를 공개하기도 했다. ‘1991년 문 교주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 당시 김일성 주석이 만나지 않으려 했으나 호텔에서도 잠도 자지 않은 채 하나님 얘기를 하고 만나서도 ‘공산주의는 안 된다’고 말하는 배포에 반해 만나 형제의 연을 맺었고, 김정일 위원장에게도 각별히 배려하도록 유언을 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통일교는 북에 ‘교회와 평화센터’와 평화자동차 공장 설립 등을 허락받는 등 각별한 관계 덕분에 미국의 여기자 석방 등에 ‘역할’을 했다는 게 통일교 쪽의 설명이다.
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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