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인간·농촌·도시 어울린 열린공동체 준비중
귀농인에게 절 땅 주고 생태에너지학교도 열어
(십승지: 환란 도피처)
도·농 공동체 꿈꾸는 원혜스님
예부터 ‘춘마곡 추갑사’(봄엔 마곡사, 가을엔 갑사가 최고)라 했던가. 충남 공주시 사곡면 태화산 골짜기에선 태극 곡선으로 휘감아도는 계곡물을 머금은 신록들의 응원에 수백년 동안 전각을 지탱해온 고목들이 천년의 침묵을 깨고 용틀임을 시작한다.
마곡사는 <정감록>에 따르면 전쟁에도 화가 미치지 않는 열곳(십승지) 중 한 곳으로 여길 정도로 사람이 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명당으로 꼽혔다. 정감사상이 유행했던 황해도 지역민 1천여명이 이곳 샘골로 이주해올 정도였다. 일제의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울분을 참지 못한 청년 백범 김구가 일제 장교를 죽인 뒤 숨어들어 머리를 깎고 출가했던 곳도 마곡사였다.
그런 은둔의 골짜기 마곡사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마곡사 누리집(magoksa.or.kr)에 들어가면, ‘마곡사공동체’의 이름을 지어달라는 공지문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마곡사에 ‘공동체’가 화두로 떠오른 것은 원혜(57) 스님이 2009년 가을 주지를 맡으면서부터다.
지난 6일 그 변화를 이끄는 주지 원혜 스님이 차 한잔을 건네준다. 평소 말수가 거의 없는데도 가끔씩은 구수한 입담과 평화로운 미소를 잃지 않는 그를 닮은 차다. 그와 마곡사 식구들이 직접 심어 거둔 돼지감자차다.
마곡사에서 직접 키운 것이 돼지감자만은 아니다. 고구마와 감자와 호박과 콩과 고추와 온갖 채소들까지. 마곡사 공양에 올라온 먹을거리들의 대부분은 마곡사 스님들과 직원들,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이 경내 생태농장 2천여평에서 가꾸고 거둔 것들이다. 배추가 ‘금치’였던 지난 늦가을엔 이곳에서 심은 배추를 지역민들에게 몇 포기씩 나눠주고, 함께 김치를 담가 다문화가정 등에 나눠주기도 했다.
원혜 스님은 절 식구들만이 아니라 인근 지역민들과 귀농자들, 도시인들과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마곡사 공동체’를 꿈꾸고 있다. 승가공동체만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 농촌과 도시’가 함께 어우러지는 ‘열린 공동체’를 만들어보자는 꿈이다.
마곡사가 250만여평 땅을 가지고 있는 것을 비롯해 산사들은 많은 땅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놀리고 있다. 도시인들은 시골에 내려와도 땅이 없다. 스님이 도시인도 살고, 땅도 쓰이게 해 산사와 도시인이 함께 살 활로를 개척하고 나선 까닭이다.
스님은 열아홉살에 산사로 출가해 오래 숲에 머문 ‘산인’이다. 그러나 그도 1999~2007년까지 서울 강남 봉은사 주지를 지내며 도시생활을 해볼 만큼 해보았고, 도시인들의 고달픈 모습을 누구보다도 가깝게 지켜보았기에 “시골 가면 뭘 해서 먹고 사느냐”며 고개부터 절레절레 흔드는 도시인들을 향해 “교통 지옥, 입시 지옥, 생업 지옥에서 생고생하지 말고, 좀 적게 쓰면서 좋은 공기 마시고, 조금씩 나눠 먹고, 수행하면서 함께 살아가자”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절 인근에 귀농자가 살 집만 마련하면 마곡사 경내의 땅을 함께 경작할 수 있도록 해볼 작정이다. 수십년 전까지 1천여명이 살던 샘골엔 이제 12가구만 남아 있다. 이 일대 땅 10만여평에 귀농인들과 함께 가꿀 공동체농장을 만들어보겠다는 것이다.
그가 마곡사에 와 백범 삭발 터 옆 계곡에 놓은 멋진 디딤돌처럼 지금은 공동체의 초석을 놓는 단계에 있다. 공주와 유구 등의 농민들과 함께 두세달에 한번씩 한 ‘마곡사공동체 만들기’를 위한 워크숍은 준비운동이었다. 워크숍에서 목조건축물의 단점으로 인해 절 예산의 10%가량을 난방비로 소비하는 절집 안부터 생태적 에너지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지적이 있자 그는 말사들과 함께 전각 내부의 틈새 메우기부터 시작했다.
오는 14~15일 마곡사와 숲길에서 열릴 신록축제에서도 참가자들이 자연 속에서 캠핑을 즐기거나 성냥 5개비로 라면을 끓이는 효율적인 에너지 사용 실험을 함께 해보도록 한 것도 작은 것부터 생태적 환경을 길들이자는 취지다.
최근엔 시민운동을 하다 인근으로 귀농한 박승옥 전 시민발전소 소장 등과 함께 주위 폐교 터에 생태에너지건축학교를 열었다. 생태에너지건축학교 발기인들이 벌써 흙집 짓기를 배워 살 집을 차례로 지어보자는 계모임도 만들었다. 또 일단 마곡사공동체를 단 며칠만이라도 함께 해볼 수 있는 3박4일, 1주일, 21일 단기출가학교도 6월부터 열 계획이다.
“경제성장을 하고,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오직 한가지 이데올로기만을 향해 치달으면서 공기, 땅, 물 등 자연이 다 오염됐어요. 그건 결국 사람이 오염됐기 때문이지요. 세상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우리 자신이 탐욕의 덩어리가 되어버려 빠져나오려야 빠져나오지 못할 정도가 되어버렸어요. 대단히 어리석거나 대단한 용기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지요.”
마곡사를 환란의 도피처인 십승지가 아니라 탐욕의 현대병을 이겨내는 치유처로 만들어가고 있는 원혜 스님이 마곡사 숲속에서 지친 도시인들을 향해 손짓하며 부르고 있다.
공주/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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