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 세미나에서 “카리스마적 리더십 비슷”
교회성장연구소 “새마을 운동 원조가 조 목사의 새마음운동”
박정희 전대통령은 ‘경제 대통령.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는 ‘종교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 집권 시절 기독교(개신교)의 놀라운 성장을 조명한 세미나 발표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조용기 목사’의 유사성이 집중 조명됐다.
서울신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가 지난 7일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서울신대 성봉기념관에서 연 ‘제67회 정기세미나’에서였다. 이 세미나 기조발제에 나선 서울신대 최동규(교회성장학) 교수가 한 ‘박정희 시대의 교회 성장’에서 ‘잘 살아보세’를 구호로 삼고 추진된 새마을운동은 가난에 찌들어 살아온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었고, 물질적 번영은 기독교인들에게 축복의 증거로 여겨졌다”며 “이 시대에 가장 빠르게 성장한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의 축복에 대한 강조는 박정희 시대의 ‘잘살아보세’ 구호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조 목사에 대해 “오중복음과 삼박자 구원의 논리로 민중의 필요를 채우는 목회를 함으로써 그 교회를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로 성장시켰다”며 “교회의 규모가 커지면서 자칫 소외된 신자들이 생길 수도 있었지만 이 교회가 고안한 체계적인 구역조직은 신자들이 소그룹 안에서 영적 욕구와 삶의 필요를 충분히 채울 수 있도록 돕는 수단이 되었다”고 보았다. 그는 “60·70년대 한국교회의 성장이 카리스마적 리더십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데, 이런 카리스마적 목회 리더십 양상이 경제개발을 중심으로 근대화를 추진했던 박정희 대통령의 카리스마적 통치방식과 비슷하다”며 “그 유사성은 뚜렷한 비전과 목표를 가지고 집단을 변화와 상징으로 이끌려고 했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고 분석했다.
‘박정희와 조용기의 관계’에 대한 조명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7년 교회성장연구소가 낸 ‘CEO조용기’(김성국·백기복·최연 공저)에서는 새마을 운동의 원조가 바로 조 목사의 ‘새마음운동’이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다음 내용에서다.
“조 목사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처한 절망과 자기비하의 사회적 정황 속에서, 대중들의 내면의 소리를 들어낼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잘 살아 보자’는 소박한 욕구였고, 사람대접 받고 싶다는 갈망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어떻게?’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새마을운동으로 그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였다면, 조용기 목사는 동시대에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복음전파를 통하여 해법을 제시하였다. 이를테면 새마을운동에 대비되는 새마음운동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도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이 새마을운동에 착안한 것은 조용기 목사로부터의 자문을 통해 얻은 ‘새마음운동’의 아이디어를 그의 식으로 변형한 것이었다고 한다.”
한편 최 교수가 한국통계연감을 출처로 한 조사에 따르면 박정희가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1961년 60만7천여 명이던 기독교 신자는 김재규의 총탄에 사망한 1979년 598만여 명으로 늘었다. 884.3%의 증가다. 그는 “같은 기간에 천주교는 149.1%, 불교는 1074%, 유교는 2746%로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불교와 유교의 성장율을 매우 과장된 것으로 보여 신뢰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이 기간동안 5823개이던 교회는 2만1천115개로, 매년 800개씩 늘었다고 한다. 매일 2.2개의 교회가 새로 생긴 셈이다.
교단별로 보면 장로회 통합이 2.8배, 장로회 합동이 3.7배, 장로회 기장이 1.6배, 감리회가 5.4배, 기성이 4.2배,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속한 기하성(기독교하나님의성회)이 18배의 성장률을 기록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기독교의 급성장 요인에 대해 최 교수는 ‘반공이데올로기를 통한 통제와 억압의 독재로 인한 불안과 긴장이 심리적 안정과 안녕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종교족 의존감을 높였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와 함께 유교와 같이 근대화에 적응하지 못한 전통종교들이 쇠퇴한 자리, 무교와 같이 정부의 관점에서 근대화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해 밀어낸 자리를 기독교가 차지하게 됐다는 주장들을 제시하며 “기독교가 근대화의 이념과 가치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적응함으로써 성장했음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급격한 도시화의 과정에서 농촌을 떠나 도시로 이주한 뒤 공동체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교회가 적절한 대안공동체가 된 점도 성장의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반면 ‘전통종교들이 크게 성장하지못한 것은 민중과 상당한 거리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문화의 환경에 적응하고, 복음을 들어야 할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춰 그들의 필요와 욕구를 채워줌으로써 교회성장의 효율성을 높였지만, 타종교들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발제자는 성장의 그늘도 조명했다. 최 교수는 “질적 성장과의 균형감각 없이 양적 성장에만 몰두함으로써 교회병리적 문제들이 발생했는데, 가장 큰 문제는 신앙을 믿음과 실천이 어우러지는 통전적 시각에서 보지 못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한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눈부신 양적 성장을 기록했지만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억압적 형태를 띠었던 한국사회와 매우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성장지상주의와 맞물려 개교회 이기주의가 박정희 시대부터 뚜렷하게 나타나기 시작해 지역교회들이 선교보다는 이동성장에 의존하기 시작했고, 근대사회의 개인주의적 가치가 마치 기독교 신앙에 사회성과 역사성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처럼 인식되었다”고 보았다. ‘그 결과 시간이 갈수록 기독교가 일제강점기에 사회에 강한 영향력을 끼쳤던 모습은 점차 약해졌다’는 것이다.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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