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사제성화의날에 유언장을 써 함에 바구니에 넣고 있는 인천교구 사제들.
각막을 기증해 마지막까지 빛을 선물로 주고 떠난 김수환 추기경과 아프리카에서 봉사하던 중 병을 얻어 선종한 이태석 신부, 북에 간 임수경씨를 데려오던 문규현 신부, 암울한 시절 독재에 분연히 맞서던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 이들은 모두 사제들이다.
지난해 말 정진석 추기경의 ‘4대강 개발 찬성조 발언’ 등으로 한국 가톨릭 교단이 ‘갈수록 부자와 권력 편으로 기울며 기득권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않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가톨릭 사제는 ‘독특한 위상’을 굳히고 있다.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가톨릭교회가 가장 존경받는 종교 기관으로 평가받는 것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개신교 주요단체인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가 최근 전국수련회에서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가장 신뢰하는 종교기관’은 가톨릭교회가 41.14%로, 불교사찰 33.5%, 개신교회 20%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는 다른 종교 성직자들이 비리에 연루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과 비교해 사제들은 더 청렴하고 양심적이라는 이미지에 따른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종교계의 분석이다. 서구 국가들의 경우 사제 수 감소로 가톨릭교회들이 고충을 겪고 있는 것과 달리 여전히 사제 지원자가 줄지 않고 있는 것도 한국 가톨릭의 독특한 점 가운데 하나다. 최근 발간된 ‘2010 한국천주교회 통계’에 따르면 ‘한국가톨릭 사제 수’는 2010년 말 현재 1년 전보다 118명이 늘어난 4522명(추기경·주교 포함)이다. 국내에서 사제들은 지난 10년 동안 평균 2.9%씩 증가해왔다.
오는 1일은 가톨릭에서 지정한 ‘사제 성화의 날’로 사제들이 자신이 ‘사제임’을 다시금 되새겨보는 날이다. 이 날은 가톨릭에서 자신을 ‘생명의 양식’으로 내어준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마음’(성심)을 공경한다는 의미로 정한 ‘예수 성심 대축일’이기도 하다. 교황 요한 바오로2세(1920~2005년)는 지난 1995년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그리스도의 희생제사인 미사를 봉헌하는 사제들이 예수성심을 공경하는 날에 사제직분의 소명을 새기고, 예수 그리스도롤 닮아가도록 기도하라”며 ‘사제 성화의 날’을 지정한 바 있다.
각 교구들은 이 날을 맞아 다채로운 행사들을 연다. 서울대교구는 오전 10시 수많은 선배들이 순교를 당한 절두산성지 등에서 기념식을 갖는다. 인천교구 사제들은 오전 10시30분 답동 주교좌성당에서 ‘쪽방 촌의 슈바이처’ 고 선우경식 요셉의원 원장(1945-2008)의 삶을 담은 영상을 본 뒤 미사를 봉헌하고, 유언장을 쓴다. 사제들이 저축을 비롯한 사적인 재산을 사후에 어떻게 처리할지 등의 내용을 담은 유언장을 쓰고, 이를 정기적으로 다시 쓰는 갱신식은 이미 모든 교구에서 시행 중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사제들은 장기기증 서약에도 앞장 선다. 서울대교구 사제들은 지난 2006년 성체 대회에서 참석 사제 600여명 전원이 장기기증을 서약하기도 했다.
지난해 사제성화의날에 유언장 갱신 봉헌 예식을 드리고 있는 인천교구 사제들.
사제가 되려면 신학대에 진학하고 이후 군대와 복지시설 봉사기간을 포함해 평균 10년간의 수련을 거쳐야 한다. 이렇게 사제가 되어서도 100만원을 조금 넘는 월급을 받으며 70세 정년 때까지 봉사할 것을 요구받는다. 평생 독신으로 살아가면서 세상을 마칠 때도 사유 재산과 장기까지 세상을 위해 내어놓는 게 사제의 직분인 셈이다.
이희연 서울대교구 홍보팀장은 “사제들은 한곳에 있지않고 인사 발령을 받아 옮겨다니는데다 독신으로 딸린 가족이 없다보니 소유로부터 좀 더 자유롭다. 일반인들로선 쉽지않을 독신 생활을 감당해내는데 대해 신자들이 여전히 거룩하다는 느낌과 함께 존경심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글 조현 종교전문기자cho@hani.co.kr
종교사제복에 담긴 의미
장백의에 영대를 걸친 모습(왼쪽), 검은색 수단 위에 개두포를 찬 모습(가운데),
미사를 집전할 때 장백의 위에 제를 입은 모습(오른쪽).
‘폭이 좁고 딱딱하게 세운 로만칼라’로 상징되는 사제복엔 어떤 의미가 숨어있을까. 한국가톨릭주교회의는 사제 성화의 날을 맞아 사제 복장의 의미를 설명한 자료를 공개했다.
보통 사제들이 발목까지 내려오게 입는 옷은 ‘수단(soutane)’이다. 수단엔 ‘하느님과 교회에 봉사하려고 세속에서는 죽었다’는 뜻이 담겨 있다. ‘수단’은 성직자의 신분에 따라 색깔을 달리하는데, 일반적으로 신부들은 검은색(여름에는 흰색), 주교와 대주교는 진홍색, 추기경은 붉은색, 교황은 흰색 수단을 입는다. 또 평상복의 목 부분을 가리는 흰 천이 개두포인데 사제들은 이를 걸칠 때 “주님, 제 머리에 투구를 씌우사 마귀의 공격을 막게 하소서”라고 기도한다.
사제가 미사 때 제의 안에 발끝까지 내려오게 입는 희고 긴옷이 장백의다. 마음의 순결과 새로운 생활의 상징이다. 장백의를 입을 때 허리에 매는 띠는 악마에 대한 투쟁과 금욕과 극기를 상징한다. 무릎까지 늘어지게 매는 폭이 넓은 띠인 영대는 성직자의 직책과 의무, 성덕을 상징한다. 제의는 전례시기와 축일에 따라 색을 달리한다. 홍색은 순교자의 피와 성령을, 백색은 영광과 순결과 기쁨을, 녹색은 연중시기의 희망을, 자색은 속죄와 회개의 정신을 상징한다.
글 조현 기자, 사진 한국가톨릭주교회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