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동양 명상수행 현장]<1>
수도원 건물 밖에는 십자가, 안 제단엔 불상
중고등학교서도 원불교무 초청, 타종교 용인
[미국의 동양 명상수행 현장]<2>-원불교의 미국 교화 현장
[미국의 동양 명상수행 현장]<3>-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 호수에서
필라델피아 원불교교당에서 교무들과 선수행 중인 미국인들
미국은 영국에서 종교의 자유를 찾아 떠난 청교도 등이 모태가 되어 건국된 나라다. 영국 태생의 선교사가 설립한 하버드대를 비롯한 수많은 학교들이 기독교정신에 따라 교육하고 있다. 대통령이 성서에 손을 얹고 취임선서를 한다. 사실상 ‘준기독교 국가’인 셈이다. 하지만 전 세계 이민자들로 이뤄진 이 나라엔 세계 대부분의 종교가 상륙해 활동하고 있다. 종교박물관인 셈이다.
한국에선 3천여개의 한인교회를 비롯해 가톨릭 성당과 불교 사찰, 원불교 교당 등이 포교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대부분 150여만명의 한인사회를 대상으로 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런데 원불교가 우리나라에서 탄생한 주요 종교로선 최초로 전북 익산에 있는 중앙총부(총본부)와는 별도로 미국 심장부 뉴욕주 50여만평에 해외총부인 원다르마센터를 지난 2일 개원했다. 원불교는 최고지도자 경산 종법사가 42일간의 장기 일정으로 미국 순방에 나서 4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반기문 사무총장을 찾아 환담했다. 또 법회를 여는 등 본격 현지 교화에 나섰다.
불교 조계종도 최근 미국에 첫 해외교구청 설립을 추진하기로 했다.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지난 1일 한국 불교문화를 유럽에 알리기 위해 간 프랑스에서 유럽의 기독교 젊은이들의 성소인 떼제공동체를 방문하고 “한국 불교가 그동안 종단 화합 등 내부 문제 해결에 급급해 10~20년 앞을 내다보고 (불교 발전을 위한) 로드맵을 세우지 못해 세계인들에게 한국 불교를 제대로 알리지 못했다“면서 “앞으로 미국 컬럼비아대의 한국학 연구 학생들에게 매년 10만 달러를 지원해 한국을 아는 인재를 양성하고 유엔에 한국 승려를 파견해 한국불교를 알리고, 현지 문화와 언어를 아는 외국인 스님을 통한 포교 활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본격적인 해외 포교 시대를 예고한 것이다.
원불교 미주총부와 한국불교 해외특별교구청 설립은 종교와 영성에 대한 미국인들의 변화 움직임과도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전통종교들의 본격적인 미국 진출을 계기로 미국에서 동양종교의 현주소와 방향을 3회에 걸쳐 살펴본다.
여전히 수도원 십자가가 내걸린 채 내부엔 불상이 모셔져 명상센터가 된 게리슨센터
10년 전 무슬림 근본주의자 테러단체가 감행한 ‘9·11테러’로 3천여명이 목숨을 잃은 무역센터건물 재건축이 한창인 뉴욕 그라운드제로가 있는 맨해튼을 지나는 허드슨강을 따라 북쪽으로 차로 1시간30분쯤 달리면 숲과 강이 어우러진 게리슨지역에 이른다.
미군의 세계 전략의 상징인 미 육군사관학교 ‘웨스트포인트’와 허드슨강을 두고 마주 본 천혜의 땅에 고풍스런 수도원건물이 있다. 수도원엔 어느 가톨릭수도원과 다름 없이 십자가가 걸려있다.
게리슨명상센터에서 참선명상중인 여성 선수행자
그런데 드나드는 사람들을 따라 메인홀을 들어간 순간 믿기지않은 장면이 펼쳐졌다. 메인홀은 스테인드글라스에 새겨진 성화를 비롯해 어느 수도원 미사를 보는 곳과 다름이 없다. 다만 다른 것은 제단 앞의 십자가 걸려있을 자리에 불상이 앉아있다. 여성 선(禪) 수행자이자 이곳 총무인 린다 다우니의 설명에 따르면 가톨릭수도원이 경영난에 봉착해 16년간이나 비워있던 것을 게리슨재단이 사들여 티베트불교와 선불교를 비롯한 다양한 종교의 수행·수도·명상과 치유 프로그램들을 운영하는 명상센터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린다는 “이곳에서 자신들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 며칠 전 온 무슬림 참여자들이 불상이 놓여있는 것에 대해 불평을 하긴 했지만, 대부분은 이곳에서 다른 종교인들이 활동하는 것을 당연스럽게 여긴다”고 밝혔다. 또 “원주인이던 가톨릭수도원에서도 수도원건물이 파괴되거나 방치되지않고 이런식으로 사용되는 것을 반기며 재단운영에 참여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게리슨명상센터에서 1~2시간 거리에 있는 젠마운틴센터도 가톨릭수도원건물을 일본 조동종 계열의 존 다이도 루리를 따르는 단체가 인수해 선수행처로 활용하고 있다. 이곳에도 다양한 종교 배경을 가진 이들이 선수행을 하고 있다.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위성도시인 글렌사이드에 있는 원불교필라델피아교당도 개신교인 크리스천사이언스교회를 10년 전 인수해 교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개척 초기 교당을 구입했던 미주선학대학원 김복인 교무는 “원불교와 매매 계약을 논의하던중 다른 교회가 사겠다고 나섰지만 크리스천사이언스교회에선 먼저 제안을 한 원불교와의 도의를 더 중시해 원불교에 매각했다”고 말했다.
개신교 교회 건물을 인수해 교당으로 사용 중인 원불교 필라델피아교당
원불교 필라델피아교당엔 매주 60~70명의 미국인들이 참선하기위해 온다. 미국인 참선을 지도하는 조정수 교무는 “참선하러 오는 미국인들 대부분이 가톨릭과 개신교, 유대교 배경을 가졌고, 이 가운데 상당수는 화요일과 토요일 참선하기 위해 교당에 오면서 일요일엔 자신의 종교집회에 나가기도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인근 중고등학교에서 매학기 학생들을 불교와 참선을 알게하기위해 교당에 보내거나 교무들을 강사로 학교에 초청할만큼 미국인들에게서 타종교나 수행을 하는데 대한 거부감이나 배타성은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게리슨, 글렌사이드(미국)/글·사진 조현종교전문기자cho@hani.co.kr
선불교학자 글렌 왈리스 교수 인터뷰
종교로서의 불교보다 실용적 선·요가 등 삶 개선에 관심
미국인들이 동양에서 온 선(禪)과 명상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미국의 불자는 2억9천여만명의 인구 가운데 2백여만명에 불과하며, 불교로 개종하는 경우도 드물다. 세계적 영적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와 틱낫한 등의 책을 읽거나 강연을 듣고 수행 프로그램에 참여하지만, 불교를 신앙하는 단계로 가는 이는 많지않다. 왜일까.
선(禪) 수행자이자 학자인 글렌 왈리스 교수를 4일 만났다. 글렌 교수는 하버드대에서 불교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명문 조지아대에서 전임교수로 재직중 원불교가 미국 필라델피아에 세운 미주선학대학원에 선응용학과가 개설됐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2005년 선수행과 교수를 함께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이 학교로 옮겨왔다.
-동양에서 미국에 온 사찰이나 선·명상센터들은 명성과 달리 실제는 현지인들에게 깊게 파고들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미국인들은 쇼핑하듯이 필요한 명상과 프로그램만 취하길 원하는 것이 아닌가.
“잘 관찰했다. 그것은 미국 뿐 아니라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미국인들은 불교나 동양철학엔 별 관심이 없다. 오히려 선이나 요가 등에만 관심이 있다. 미국인들은 실용적이어서 종교나 철학보다는 실제로 삶을 개선시키는 방법을 배우고 싶어한다.”
-동양의 영적 지도자들이 소문과 달리 자국 동포들이 아닌 미국인들에겐 결합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동양의 불교는 중국에선 도교와 결합해 중국 불교문화를 낳았고, 한국불교, 일본불교, 스리랑카불교와 미얀마불교도 자국의 문화와 전통을 지닌 독특성을 가지고 있다. 동양의 영적지도자들은 선이나 명상만이 아니라 그들의 종교문화와 전통을 함께 가져온다. 오히려 진리보다는 문화와 전통이 사찰을 지배한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종교나 전통이나 문화에는 관심이 없다. 영적지도자들은 둘을 함께 먹이려하지만 미국인들은 둘을 분리해서 자신이 필요한 명상만을 하기를 원한다.”
-기존 종교를 유지하면서 불교수행을 하는 이들이 늘어가는데, 이런 흐름이 서양종교의 근본주의적 경향을 완화시키는 기능을 할 것으로 보는가.
“한 수녀원장이 위파사나(동남아시아권 상좌부불교의 관찰수행)를 하고 난 뒤 박사학위를 제출한 것을 보니, 그 수행에서 얻은 체험을 모두 기독교적으로 바꾸는 것을 보았다.”
-동양의 수행자들은 나름대로 영적 체험을 했지만 이를 전달하는 방법에 미숙한 반면, 서양의 수행자들은 깊은 영적 체험이 없이도 전달 기법이나 프로그램을 잘 개발해 사업적 성공을 거두는데, 당신은 둘 중 어느쪽에 끌리는가.
“깨달음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면, 그가 무엇을 깨달았는지, 무엇을 가졌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동양의 수행에 끌리는 이들이 동양의 선지도자들과 명상센터에 아쉬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서양은 18세기 계몽시대의 영향으로 의문엔 끊임없이 질문한다.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고 묻는다. 미국인들은 신화적 요소를 제거하고, 거대한 나무와 같은 불교에서 내 삶을 개선시켜줄 줄기만을 찾는다. 문화와 종교가 아니라 내 마음을 실질적으로 행복하고 평화롭고 자유롭게 하고 내 신체를 건강하게 하는 것을 원한다. 그래서 심리학이나 심리치료와 결합시키려는 경향이 강하다. 불교도 마음을 열고 그렇게 접근하면 동양과 서양이 함께 더 풍부해질 수 있을 것이다.”
펜실베이니아 글렌사이드/글·사진 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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