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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뉴스

가톨릭수도자들은 왜 함께 살까?

등록 2011-12-01 10:39

          [유럽영성순례서 본 가톨릭 힘의 뿌리] 1.버림: 탐욕의 전차에 맞선 자발적 가난 2.공동체: 함께 먹고 기도하고 일한다 3.순교: 죽음을 두려워하지않는 믿음 4.기적: 신앙의 불꽃을 피우는 신비 5.순명: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다        
저녁6시 기도종이 울리자 곧바로 하던 일을 멈추고 미사를 위해 성당으로 함께 들어서는 오틸리엔의 수사들   스위스 서부 도시 비엘에서 서남쪽으로 네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프랑스의 산골마을 상트 피에르 샤르트뢰즈다. 지리산 노고단으로 오르는 길과 같은 꼬불꼬불한 알프스 사르트지에산길을 오르니 거대한 바위산 아래 영화 <위대한 침묵>의 배경이 된 봉쇄수도회 카르투시오수도원이 나온다. 해발 1300미터다. 1084년 브루노(1030~1101) 수도사가 처음 왔을 땐 인적이라곤 없이 태고의 고요만이 감돌았을 법한 곳이다.

  밀려드는 관람객들을 위해 카르투시오수도원은 이 건물을 수도원박물관으로 내놓았다. 두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 침대와 난로, 조그만 세면대, 기도대가 전부다. 아래층엔 장작을 패거나 목공일을 하는 작업장이 있고, 작업장 밖엔 대여섯평 가량의 텃밭을 겸한 정원이 있다. 그 정원은 사방이 높다란 벽으로 막혀있다. 수도원이라곤 하지만 다른 수도사들과 교류도 차단된 구조다.

 봉쇄수도원은 한번 들어가면 병이 나 병원에 가야하는 응급상황 등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문 밖을 나올 수 없다. 1년에 두번 가족들과 면회외엔 외부인과 접촉할 기회도 없다.  
독일 뮌헨에서 차로 한시간 거리에 있는 수도원공동체마을 성오틸리엔수도원  

 이 수도원박물관 건물을 두고 1957년 더 깊숙이 옮겨간 현 카르투시오수도원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옛 수도자들은 어떻게 이런 비경을 찾아낸 것일까. 30여분을 걸어오르자 하늘이 감춘듯한 비경 아래 철옹성 같은 벽으로 둘러싸인 현재 수도원의 모습이 나타난다. 20대부터 80대까지 수도원 지도자인 아빠스, 20명의 사제수사와 12명의 평수사 등 33명이 수도하는 곳이다. 수도원내 텃밭을 가꾸고, 인근 마을의 공장에서 이 수도원만의 독특한 약술을 제조 판매해 수도원의 생계를 해결한다. 그리고 이들은 주로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 나아가는 완덕을 위해 수도한다. 창설자 브루노의 성인 시성까지 거부해버린 채 세상의 명예마저 놓아버린 그들이다.    
영화 <위대한 침묵>의 배경이 된 알프스의 카르투시오수도원    

 세상적 욕망과 환란을 포기한 채 하느님께 자신의 삶을 맡겨버린 수도자들의 성소엔 침묵만이 흐른다. 탐욕으로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지구인들에게 외침보다 더 큰 깊은 울림을 전해주는 무욕의 고요다.    고대의 에세네파공동체로부터 유래됐다는 이런 은둔형 공동생활은 동방기독교에서 강했다. 반면 서방 기독교는 규범에 따른 공동체생활에 더 중점을 두었다. 수도원의 수도규범을 만들어 ‘은둔’이나 ‘홀로’보다는 ‘함께’와 ‘공동체’를 강조한 이가 베네딕도(480~547) 성인이다.    가톨릭에서 ‘유럽의 수호성인’으로 지정된 베네딕도는 유럽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불교가 가톨릭 이상의 엄격한 승가공동체로 출발했음에도 공동체성보다는 개인적 깨달음과 해탈을 중시하는 것과 달리 가톨릭이 여전히 공동체적 규범에 철저한 조직으로 자리매김케하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이제 베네딕도로 인해 자리잡은 수도공동체생활은 혼자 수도할 경우 유혹에 빠져 타락하거나 자칫 잘못된 길로 접어들 수 있는 위험을 제거해주고 공동의 힘으로 더 큰 시너지효과를 내면서 가톨릭의 내면적 영성을 지켜주는 보루다.  
오틸리엔수도원 내 학교 체육관에서 태권도를 배우고 있는 아이들  

 “오라 엣 라보라”

 라틴어로 ‘기도하며 일하라’는 모든 수도사들의 표어다. 이 정신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찾아 독일 뮌헨에서 서쪽으로 1시간 가량 차를 달리니 오틸리엔수도원이 나온다. 세상과 고립된 카르투시오수도원과는 사뭇 다른 전경이다. 수도원이라기보다는 공동체마을을 연상케한다. 인근 마을 아이들 750명이 다니는 학교가 있고, 가축들을 기르는 농장도 있고, 그들의 가르침을 세상에 전하는 출판사도 있고, 일반인들이 수도원 생활을 경험할 수 있는 ‘피정의집’도 마련돼 있다.    영적 자유를 위해 세상으로부터 은둔을 꾀한 전통적 수도자의 삶 뿐 아니라 그리스도교적 이웃 사랑과 형제애적 친교의 조화를 중시한 베네딕도적 구성이 아닐 수 없다. 한쪽으로 치우치는 데서 벗어나 기도와 노동의 균형 뿐 아니라 인문적 교양과 교육을 중시한 조화미가 수도원을 휘감고 있다.  
미사중 성경 구절을 함께 낭송하고 있는 오틸리엔수도원의 수사들  

 오틸리엔 수도원 수사들은 오전 5시15분 아침 기도로 시작해 오후 8시 끝기도 후 밤새 대침묵 시간을 갖기까지 온종일 기도와 노동을 반복한다. 밖에서 교사를 하다가 10년 전 수도원에 들어왔다는 마우로 브로머(50) 수사는  ‘노동이 곧 기도’로, 노동이 무엇보다 중시되지만, 노동과 성취에 집착하지 않는 수도사의 정신을 보여주었다. 그는 “기도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자기가 하던 일이 99% 완성됐더라도 일을 멈춘 다음, 기도하고 온 뒤 다시 일을 한다”며 “언제든 ‘조금만 더 하면 돈을 벌 수 있는데’, ‘조금만 더 하면 완성할 수 있는데’ 하는 성급한 마음을 내려놓도록 노력한다”고 말했다.

상트 피에르 샤르트뢰즈(프랑스)·오틸리엔(독일)/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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