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영성순례서 본 가톨릭 힘의 뿌리]
1.버림: 탐욕의 전차에 맞선 자발적 가난
2.공동체: 함께 먹고 기도하고 일한다
3. 순교: 죽음을 두려워하지않는 믿음
4.기적: 신앙의 불꽃을 피우는 신비
5.순명: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다
성모 발현지 루르드의 동굴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순례객들
명동성당을 비롯한 우리나라 성당에선 마리아상 아래 신자들이 켜놓은 수많은 촛불이 타오르고, 그 앞에서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유럽가톨릭의 수호성인이 베네딕토성인이라면, 한국가톨릭의 수호성인은 요셉과 마리아다.
요셉은 한국가톨릭이 베이징 교구에 속했던 초기에 중국가톨릭의 수호성인을 따온 것이고, 마리아는 조선교구가 독립하면서 지정한 수호성인이다. 성모 마리아는 ‘어머니’에 대해 애틋한 한국적 정서와 신앙이 더해지면서 한국 가톨릭 신자들에겐 더욱 각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성모 마리아는 어머니처럼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가 신앙의 심지에 작은 불씨를 당겨주는 독특한 구실을 하고 있는 셈이다.
프랑스 남서부의 작은 시골마을 루르드는 150여년 전 동굴 속에서 성모 마리아를 보았다는 14살 소녀 베르나데트의 증언과 교황청의 공인으로 인해 가톨릭의 ‘꿈의 순례지’로 떠오른 곳이다. 루르드는 관광 성수기가 지난 겨울인데도 여전히 적지않은 순례객들이 찾은 곳이다. 연간 600만명의 순례객이 찾아 프랑스에서 파리 다음으로 호텔 밀집도가 높은 곳이라니 이미 시골마을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만 10만여명이 다녀갔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루르드의 동굴 위에 세워진 동굴성당 앞을 지나 동굴로 향하는 순례객들
루르드가 이렇게 성지가 된 것은 1858년 2월 11일 베르나데트란 이 마을 소녀가 가브강변의 산에 나무를 하러왔다가 마사비엘동굴에서 ‘젊고 아름다운 여인’을 본 것이 시발이다. 베르나데트는 이날부터 5개월간 18번이나 성모 마리아 발현을 체험한다. 신심이 깊었던 이 소녀는 하얀 드레스는 입은 여인을 향해 ‘하느님께로부터 오셨으면 여기 계시고, 아니라면 떠나가라’고 말하자, 자신이 ‘원죄 없이 잉태된 마리아’임을 밝혔다고 한다.
성모 마리아가 발현했다는 동굴 위에 지어진 거대한 성당이 이곳에서 마리아의 위상을 말해준다. 루르드엔 동굴성당을 비롯 30여개의 성당이 있고, 6개국어로 된 고해성소가 마련돼 순례객들이 매일 미사를 드리고, 고해성사를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성모 발현지인 동굴의 성모상 앞에선 일부 신자들이 큰절을 하거나 무릎을 꿇은 채 기도한다. 그 뒤 의자에선 수십명이 묵상을 한다. 동굴 옆엔 동굴에서 샘솟아 ‘기적의 물’로 일컬어지는 샘물과 연결된 수십개의 수도에서 순례객들이 물을 마시거나 물통에 물을 담는다. 물을 마신 순례객들은 동굴 오른편에 마련된 ‘침례소’에서 기적수에 온몸을 담그는 침례를 한다. 순례객들이 먹고 씻는 이 물은 수많은 병자들이 치유된 ‘기적의 물’로 알려져있다.
루르드의 동굴 성당 광장 건너편에 있는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 묵상을 하는 순례객들
성모 성지는 루르드 말고도 1531년 4차례 발현한 멕시코 과달루페, 1830년 발현해 ‘기적의 메달’로 유명한 프랑스 파리 뤼드박, 1846년 9월 발현한 프랑스의 라살레트, 1879년발현한 아일랜드 녹, 1917년 6차례 발현한 포르투칼의 파티마, 1932년과 33년 잇따라 발현한 벨기에의 보랭과 바뇌 등이 가톨릭교회의 ‘공인’된 계시지역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처럼 성모 마리아에 대한 높은 신심열기와 순례객 때문에 가톨릭은 ‘마리아교’라는 오해에 직면하기도 한다. 루르드엔 예수성심시녀회 이 마리스텔라(45) 수녀가 파견돼 한국인 순례객들을 안내하고 있다. 마리스텔라 수녀는 개신교회의 신앙간증 이상의 열정으로 마리아 신심을 북돋운다. 하지만 순례단을 이끈 한국가톨릭주교회의 홍보국장 이정주 신부는 “가톨릭에선 성인들에게 공경의 예를 바치는데, 성모님에 대해선 그 가운데도 가장 큰 ‘상경(上敬)’의 예를 바친다”면서 “하지만 신격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탄생부터 죽음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지켜준 신앙의 가장 완벽한 모범자이자 ‘하느님의 어머니’이고,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전구자(기도를 전해주는 이)로서 존경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루르드에서 성모 발현을 체험한 성녀 베르나데트
가톨릭에서 기적으로 인정 받기까지는 적지않은 시간과 검증이 요구된다. 가톨릭에서 ‘성인’으로 추대되기 위해서도 ‘기적’ 등이 확인되어야 한다. 다만 목숨을 내놓고 신앙을 지킨 순교자만은 그 자체만으로 기적시돼 기적이 없애도 성인으로 추대될 수 있다. 가톨릭에선 성인을 추대할 때도, 기적을 공인할 때도 엄격하기 그지 없다. 한국의 나주의 경우처럼 교회가 공인하지 않는 사적 성지화는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민간의 신앙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타종교의 성지와 달리 이런 교회 차원의 엄격한 ‘공인’제도는 일단 승인되면 의심할 바 없는 ‘기적의 성소’로 신심을 불러오는 구실을 한다. 루르드가 예루살렘 이상으로 순례객이 몰려드는데서 알 수 있다.
어느 나라, 어느 지역, 어떤 이들도 외면하지 않을 성심을 지닌 성모 마리아가 왜 이 동굴에 18번이나 나타난 것일까. 소녀 베르나데트의 이야기가 그 의문에 답해준다. 9형제 자매 가운데 넷이 굶어 죽을만큼 가난했던 집에서 태어나 감옥으로 쓰이던 외딴 방한칸에 온 식구가 함께 살았던 소녀. 그 소녀가 나무하러 갔던 동굴은 환자들이 환부를 감싸던 헝겁을 비롯한 쓰레기들이 쌓인 강둑에 있었다. 성모 마리아는 바로 베르나데트처럼 가난하고 불쌍한 소녀가 아니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그런 곳에서 나타났다.
마리아가 나타나 베르나데트에 준 기적은 ‘현세의 행복’도 아니었다. 베르나데트는 성모 발현을 목격했다는 고백 이후 의심하는 이들로부터 많은 핍박을 받았고, 수녀회에 입회한 뒤 35살로 요절했다.
하지만 그는 14살 소녀의 것이라곤 믿겨지지않은 용서와 사랑과 감사를 담은 ‘신앙 고백’을 통해 과연 진정한 기적이 무엇인지를 말해주었다.
“성모님, 성모님을 봤다는 이유로 마구간에 갇혀 있었던 일, 사람들이, ‘이 여자가 바로 베르나데트인가?’하고 말할 정도로 보잘 것 없고 빈약한 자신을 마치도 희귀한 동물처럼 보여졌던 모든 것에 대해 하느님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당신이 제 눈앞에 나타나실 때도, 나타나지 않으실 때도 당신께서 언제나 저와 함께 계시고, 존재하심에 감사드립니다. 부모님이 가난했던 것, 집에서 무엇 하나 잘 풀려나가지 않았던 것, 방앗간이 망한 것, 제가 아이들을 돌보고 양떼를 지키지않으면 안되었던 것 예수님 감사드립니다. 뺨을 맞거나 조소와 모욕을 당한 것,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한 사람들의 일, 나에게 부정한 의심을 하고, 내가 성모님을 이용해서 큰 돈을 벌고 있다고 의심한 사람들이 있던 일도 성모님, 감사드립니다.”
루르드(프랑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비상국면 남북관계 풀 도인의 훈수는?
조현기자 트위터 팔로우해 조현 저서와 휴 베스트셀러 선물로 받기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